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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7년 정유(丁酉)년 닭의 해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난세에 태어나 60평생 난세 속에서 누구보다도 힘겹게 살아온 ‘57년 정유생들이 12월 31일이면 만 60세가 돼 정년을 맞는다.

 어려운 시절, 이 세상에 태어나 농경사회와 산업화 과정 그리고 민주화 과정을 목격하고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이들이 파란만장했던 직업전선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57년생 인구는 약 50여만 명 정도 된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태어난 이들은 당시 부모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정부의 재건운동에 동원돼 대부분이 보살핌 없이 방임된 상태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그러한 이들은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 격랑의 파고를 또 한 번 넘기고 드디어 1964년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슴에는 훈장처럼 손수건을 달고 문명사회로 들어선 것이다. 서울의 학생들은 전차를 타고 시골의 학생들은 걷거나 부모님이 제공한 소달구지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 한발 두발 뻗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길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새나라의 어린이’ 라는 동요를 통해서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지런함을 배웠고 ‘학교종’이라는 동요를 통해 학교종이 땡땡땡 치면 모여야 한다는 시간의 개념을 배우고 자란 것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올해는 일하는 해’로 시작하는 ‘일하는 해’ 와 ‘삼천만 온 겨레가 힘과 뜻을 한데 묶어… 보아라 저 험산 뚫고 뻗어가는 고속도로’로 시작하는 ‘건설의 해’ 라는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 점심시간에는 UN과 미국 성조기 마크가 있는 포대의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만든 급식빵 한 덩이, 뽀드득 소리가 나는 건우유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 구해준 나라, 우리의 허기를 달래준 고마운 형제의 나라 미국, 이들은 언젠가는 그 은혜를 꼭 갚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가난을 물리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기생충 박멸’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아침을 굶고 등교해 일제히 나눠 준 기생충 약을 먹고 어지럼병으로 쓰러진 아이들, 몸속의 이와 빈대를 잡는다고 머리와 옷 속에 살충 농약인 디디티 가루를 뿌려주던 선생님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내기에 동원되고 녹색혁명과 산림녹화를 위해 퇴비증산, 식목행사, 싸리씨 채취, 송충이 잡기, 그리고 연료 조달을 위한 솔방울과 관솔 줍기, 근검절약의 일환으로 실시한 벼이삭과 보리이삭 줍기에 동원된 이들,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건강한 육체로 부강한 국가 재건을 위해 모두가 참고 잘 이겨냈다.

 이런 세대들이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과 개인의 신념에 따라 누구는 농업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 혹은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산업역군의 한 획을 담당했으며 대학을 진학한 이들 역시 무너진 대한민국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몸과 마음을 다 받쳤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마친 이들, 격동의 80대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그때, 이들은 농사는 물론 공장과 건설현장,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그 중심에 있었다.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을 꾸미고 새로운 세대로서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다.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영광의 88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치고 중진국의 반열까지 끌어 올린 이들은 후세들의 재롱을 낙으로 삼아 가정은 잠시 평온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1997년 혹독한 IMF를 맞이한다.

 아, 비운의 1957년생, 이들은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고 선반기계에 손가락 잘려가며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체마저 부도로 파탄이 나고 노숙인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서울역 노숙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이 57년생으로 이를 반증한다. 이런 역경을 겪어 온 이들이 기사회생으로 다시 부활해 오늘 이 자리를 지켜왔다. 고난의 세월, 격동의 세월이라는 수식어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57년 정유생 닭띠, ‘57년 정유생 여러분! 당신들이 진정 애국자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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