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출범 14번째 시즌 만에 곪을 대로 곪은 심판 문제가 마침내 터졌다.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과 이를 비디오 판독으로도 바로 잡지 못한 한국배구연맹(KOVO)의 미숙한 경기 운영에 팬들의 비난이 극에 달했다.

연맹은 21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19일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 경기에서 오점을 남긴 당사자들을 강력하게 징계했다. 진병운 주심과 이광훈 부심에겐 무기한 출장 정지, 어창선 경기감독관과 유명현 심판감독관에겐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려졌다. 다만 팬들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린 요구는 규정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일 3세트 20-20 상황, 한국전력 센터 이재목이 네트 위에서 공을 밀어 넣었고 KB손보 양준식이 블로킹을 위해 뛰어올랐다. 주심은 이재목의 캐치볼 파울을 선언했다.

한국전력 비디오 판독 요청 후엔 양준식의 네트 터치로 판정이 뒤바뀌었다. 이 결정에 따라 한국전력이 1점을 따내자 권순찬 KB손보 감독은 "이재목의 캐치볼 파울이 먼저"라고 항의하다가 경기 지연에 따른 두 차례 경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이 또 1점을 거저 가져갔다. KB손보가 21-20으로 앞설 상황이 20-22로 뒤바뀐 것이다. 주심은 4세트 한국전력의 네트 터치를 KB손보 선수의 범실로 착각하기도 했다. 결국 KB손보는 1-3으로 졌다.

3세트 상황은 주심의 오심이라기보다 비디오 판독 후 제대로 규정을 적용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4세트 오판을 곁들여 전반적인 오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심은 경기감독관, 심판감독관과 더불어 3인 비디오 판독에서 캐치볼 반칙이 먼저라는 점을 잡아내지 못해 징계를 받았다. 재경기를 요청한 KB손보도 대승적으로 연맹의 결정을 수용했다.

2017-2018시즌 V리그는 시작 전부터 심판 문제로 곤욕을 겪었다. 극비에 부쳐야 할 심판배정표를 일부 심판들이 공유·유출한 것으로 드러나자 연루자들에 2∼5년간 자격 정지와 심판 배정 중지 징계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시즌 개막 전 연맹 전문위원과 심판원이 ‘클린 선포식’을 열어 지속적인 자정 노력과 심판 운영의 선진화를 약속했지만, 잇따른 오심으로 큰 빛이 나진 않았다.

2005년 프로 출범 후 쌓인 심판 불신은 경기를 치를수록 더욱 커졌다. 오심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시기와 횟수에 따라 ‘실수’는 ‘실력’으로 바뀐다. 일부 배구인은 심판들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특정 심판들은 실력보다 과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로선 심판들이 최대한 공정한 판정을 내리도록 매 경기 집중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질 향상은 비시즌 후 집중 교육으로 이뤄져야 한다.

심판의 오심을 최소화하는 것은 연맹의 몫이다. 능력 있는 베테랑 경기운영위원과 심판감독관을 투입해 판정과 규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심판을 도울 의무가 있다.

연맹 심판위원회는 당장 심판 2명의 공백이 생김에 따라 다음 시즌에 주·부심으로 승격할 예정인 선심 요원 중 3명을 추려 부심으로 기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체요원마저 경험 부족으로 또 다른 논란을 부른다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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