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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구 한국소방안전협회 인천지부장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 이후 처음으로 20명 이상이 사망하는 화재참사가 발생했다. 모두 29명이 사망했고 그 중 20명이 2층에서 피난에 실패해 숨졌다. 장성요양병원의 경우는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거의 거동이 어려운 치매 노인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제천 사고는 오후 3시50분께 발생했고, 연기 및 화염을 발견한 사람들이 피난을 외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화재 발생 후 1시간 20여 분까지도 가족과 통화한 사망자도 있다고 한다. 이번 제천 사고는 건축물의 피난·방화시설 유지관리의 실패가 사망자를 키웠다.

건축물이 지어질 때 방화 및 소방안전과 관련해 건축법이 담당하는 영역과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이 담당하는 영역이 있다. 건축법이 담당하는 영역은 내화구조, 방화구획 등 계단, 복도, 방화문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을 담당하며 건축물이 지어지는 동안 주로 관여가 된다. 소방시설법이 담당하는 영역은 건축물에 들어가는 소방시설 설치와 소방시설 및 방화문 등의 유지관리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이번 사고를 외장재, 필로티 구조 등 건축법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많은 기사들은 문제의 맥을 정확히 잡고 있다.

해당 건물 도면을 보면 서쪽 중앙에 필로티와 연결된 주계단이 있고, 필로티 영역의 화재가 해당 계단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 정황은 많이 보도가 됐다. 주계단 외에 2차 대피로로 사용될 계단은 건물 서남쪽 모서리에 존재한다. 3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 계단을 피난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고, 2층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3층 남자목욕탕의 경우 주출입구가 피난이 불가하자 이발소로 연결되는 2차 대피로로 전원 피난에 성공해 사망자가 없었으며, 2층에서는 사망자 20명 중 11명이 필로티로부터 연기가 확산된 주출입구 부근에서 발견됐고, 2차 대피로 방화문 직전에서는 1명만이 발견됐다. 2차 대피로가 창고로 활용되는 등 피난경로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2차 대피로에 유도등이 불을 밝혀주고 물건 적치가 없었더라면 3층의 경우처럼 모두 살았을 것이다.

소방시설법 제10조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유지ㆍ관리 조항은 건물 복도에 물건 적치를 금하는 등 금지행위를 정하고 있다. 2015년 7월 1일부터는 건축물 피난 계획을 수립 및 시행토록 했으며, 2016년 1월 27일부터는 피난·방화시설 금지행위에 대한 신고 포상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런 규제가 있었지만 제천 스포츠센터에서는 실효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대형마트 등 큰 건축물에 가보면 방화셔터 내려오는 곳에 물건 적치행위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이런 규모의 건축물은 오래전부터 소방관이 집중 단속을 해왔으며 일반시민들의 소방 지식도 많이 높아져 민간의 지적 또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방관의 수는 한정돼 있어 기타 많은 건축물을 단속만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기 언급한 대로 2015년 7월 1일부터 건축물 피난 계획 수립을 의무화했다. 이것은 민간이 스스로 피난 방화시설을 유지 관리토록 하는 의도가 크게 있다고 본다. 이 또한 건축물마다 수립된 피난 계획을 검토 및 단속할 수 있는 정부의 행정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보험요율로서 소방 안전관리를 강제하기에는 우리나라 경제 수준으로는 시기상조다.

지인의 말이 기억난다. 본인의 유치원생 아이가 아이들만 수백 명 모이는 공연장에 갔는데 부모는 입장이 불가했더란다. 평상시 피난구, 피난경로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날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큰 공연장의 여러 개 출입구를 파악하고 피난경로를 파악하고 아이가 앉은 자리를 파악했다고 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때 이후 습관적으로 피난경로를 파악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생각을 전 국민이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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