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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지부장
"선배님들! 별것 아니지만 제가 모시고 있는 장모님이 손수 만드신 것인데, 집에 가서 한번 써보세요. 저도 써보니까 괜찮더라구요…."

한 달에 한 번 딱히 날짜를 잡지는 않지만 ROTC 연수지회 월례모임에서 한참 후배로 의료재단에 근무하는 한 동문이 빨강, 파랑 등 원색깔이 섞인 망사 수세미를 가져와 2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치매초기인 70세를 넘기신 장모님께서 한 달에 200여 개 만드시도록 부탁하고 20만 원을 드린다고 한다. 사위로서 장모님께 용돈 드리는 것이야 별것이 아니지만, 담겨있는 깊은 뜻은 참석한 동문들에게 마음을 열도록 했다.

그냥 용돈을 드릴 수 있지만 장모님의 자존심상 사위에게서 어쩌다 때가 돼서 받는 것도 아니고, 받는 분이 당당하고 또한 사위도 자식으로서 직접 드리면서 대화도 하며 이런 저런 상황도 살펴볼 수도 있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치매 초기지만 다니다 잘못 길을 들어 고생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쳐다보며 같이 있을 수도 없기에 한 곳에 집중하시며 손동작을 하다 보면 치매 예방도 할 수 있다기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되지만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 용돈을 드린단다.

어차피 드리는 용돈이어서 장모님이 맘 편히 지내도록 매달 용돈 드리는 것도 좋겠지만, 장모님이 망사 수세미 200개를 만들기 위해 일에 열중하시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고도 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식들은 자기일에 바빠서 늙으신 부모님, 특히 치매에 시달리는 부모 옆에 늘 같이 있어 주질 못한다. 물론 치매 요양병원에도 모셔보지만, 찾아가는 자식들은 죄책감과 부모를 버려둬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더욱이 부모가 있을 공간은 침대 한 칸뿐이고, 형제 간에도 가슴을 털어 놓고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분노로 편하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치매 부모를 돌보는 아름다운 또 다른 장면을 보기도 한다. 제자 겸 후배인 60여 세 대학 교수가 이제까지 같이 살기를 마다하시는 부모의 뜻에 따라 따로 떨어져 살았지만, 90세가 넘으신 치매초기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염려로 같은 아파트단지에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신문 2부를 보고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 아침마다 부모님을 찾아가 신문을 드리면서 전날 지낸 일이나, 잡수신 식사, 잠자리 등을 물으면서 아버지에게 체크해드린 신문내용을 꼭 보시라고 당부하면서 전날 드린 신문 내용 중 몇 가지를 물으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물론 한 달 신문 2부 값을 드리고 신문 보시라고 당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아들로서 부모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어 좋고, 더욱이 아침에 부모님을 뵙고 오면 아내가 관심을 갖고 묻기도 하고, 가끔은 간단한 먹거리를 가지고 찾아 뵙다 보니, 퇴근 후 저녁때에는 서로에 대한 덕담을 할 수 있어 여간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은 이것저것 다 해본다고 하지만 너무 막막하다고 한다. 심한 경우 어르신 치매에 가정이 그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식들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치매 환자나 가족의 피부에 와 닿는 치매 정도에 따른 똑 부러지는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줘야 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의 슬픈 실종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들춰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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