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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이사
올 농사는 극심한 가뭄으로 힘든 한 해였다. 감자, 고구마, 참외, 수박 등에 물을 공급하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진작 지하수 모터 시설을 구비해 놓아 다행이었지만 모종 하나하나에 물을 주느라 매일 세 시간 이상을 뙤약볕과 싸워야 했다. 특히 500개의 고구마 순은 등을 굽힌 채 일일이 흙속에 호스를 박고 지하수를 주입하느라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작년엔 600개의 고구마 순을 심었다. 그러나 인천시궁도협회장과 남수정 활터 사두(회장)직을 맡으며 여러 행사장에 참석하다 보니 농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무심한 주인을 만난 탓으로 600개의 고구마 순 중 500여 개는 땡볕에 말라 죽고 그나마 살아남은 것도 알맹이가 형편없었다. 차라리 고구마 순 값으로 농산물시장에 가 일등품 고구마를 구입할 걸 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쓰라린 경험을 되새기며 궁도협회장과 사두 임기를 마친 올해는 한눈을 팔지 않고 진통제를 복용하며 농사에 전념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추수의 순간엔 항상 즐거움이 뒤따른다. 이웃과 인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올해는 수확한 농산물을 여러 문인들과 나눠 정감이 더 깊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신세를 진 지인들에게만 농작물을 선물했다. 특히 내가 약국을 폐업한 후 건강을 염려해 주며 이런저런 약을 챙겨주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주는 약사님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농사를 짓고 있다. 소중한 분들께 드리는 농작물이기에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 오직 퇴비만 사용한다.

 참외, 매실, 대추, 고구마와 채소는 가능하면 직접 와서 수확하도록 했다. 친지들에게도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모기에 물리며 고구마 순을 걷고 열매가 찍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하는 일일 농부들의 이마엔 구슬땀이 맺혀 있다. 봄 여름 동안 키워놓은 농작물을 추수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사실과 농산물의 소중함을 체험 학습을 통해 깨달았으리라. 아마추어 농부들은 웅크렸던 등허리를 펴고 일어나 휴식을 취하며 약국을 포기하고 굳이 이렇게 힘든 농사를 짓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약국을 접고 농사를 짓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첫 번째는 사람 노릇을 하기 위해서다. 내 가족의 애경사에 친지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주었지만 약국에 얽매인 나는 공휴일이나 국경일 혹은 저녁 시간이 아니고는 그들의 애경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동안 빚진 품앗이를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전에는 약국을 닫는 공휴일이나 약국 문을 열기 전 새벽 시간에만 밭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시로 밭에 드나들 수 있어 당뇨 치료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약국을 폐업하기 전엔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혈압약을 복용해도 별 차도가 없었다. 의약분업 초기에는 처방약을 구비하기 힘들어 가위눌린 꿈을 꾸고 꿈속에서 또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약국을 포기하고 자연과 동화하니 오히려 저혈압이 됐다.

 절세를 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도 있다. 농사를 8년 이상 지으면 양도세를 33%만 내면 되고 추가로 장기 보유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약국을 경영하면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자경을 인정받기 힘들어 66%의 중과세에 감면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미워하면서 정든다는 말처럼 자의반 타의반 농부가 되어 흙과 어우러지다 보니 농사에 정이 들고 말았다. 물론 인천 만수동에서 11대를 이어오는 동안 어깨너머로 배워 온 농사기술과 농부의 후손이라는 사명감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수확은 이웃 친지들과 농작물을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누는 즐거움이다. 농산물을 선물 받은 분들 중엔 세상에 없는 보물을 받은 듯 고마워하며 매실 엑기스와 사과잼, 그리고 손맛 담긴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준 분들도 있었다. 작은 인정을 베푼 내게 큰 감동을 안겨준 이웃들이다. 사람 냄새나는 세상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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