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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허름한 돈암 곱창집/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넌 소주잔 기울이고/난 웃어주고/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너와 만남이 있었는지/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무심했던 내가/무심했던 너를/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지폐 한 장이면 족한/그 집에서 일 년 치 만남을/단번에 하자고.

 목필균 시인의 시 ‘송년회’ 전문이다. 송구(送舊)의 풍경이 예전에 비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허전해 술자리를 만든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인정이고 싶어서 시간을 내는 마음이다. 한 해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가속도가 붙어 달음박질로 그믐을 향해가고 마음도 덩달아 급해진다.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 코앞인데 비어있는 성과물이 허술해 마음이 쓰인다. 태연한 척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가슴이 애틋해진다. 문득, 한 해를 돌아본다. 인사치레를 차려야 했고, 업무고가 평가에 능력을 보여줘야 했고, 받는 것을 당연시 하는 자식에게 부모 노릇도 해야 했고, 아주 가끔은 노년의 부모님에게 자식노릇도 해야 했다. 그러다 지치면 과부하 걸린 심신을 쉬고 싶기도 했다.

 너처럼 나 역시 뛰어나지도 크게 뒤처지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갑남을녀다. 그래서 보통사람답게 역할에 성실한 한 해를 우직하게 살아왔다. 평가와 경쟁으로 긴장 팽팽한 사회적 채무가 아닌 만남은 뒤탈 없고 편한 사이라고 후순위로 밀어두곤 했다. 연말이 돼서야 회한으로 가슴이 우묵해진다. 갑옷으로 무장해 경계할 필요 없는 진솔한 마음을 내보이며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진다.

 세상은 편의성을 우선하는 풍조로 관계맺음에 까칠해졌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친숙보다는 소셜미디어로 필요에 따라 클릭 한 번이면 성사되는 일회성 만남이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관계유지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적 경제적 경비와 마음씀씀이까지 필요없는 만남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어떤 형태의 모임도 가능해서 여행도, 스포츠 게임도 깔끔하게 한 판 즐기는 것으로 끝이라고 한다. 관계맺음에 권태기가 온 사람들이 인연을 만드는 방식이라며 친절하게 배경까지 설명을 해 준다. 공들인 정성이 필요없는 관계라 내가 필요한 시간 아무 때나 접속할 수 있고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면 된다. 관계가성비 최고조의 효율이다. 뒤끝없는 효율성이라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받아내기 위해 일상을 포장한 행복함을 과시하고 때로는 섬뜩하고 자극적인 글을 올려서까지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결국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다.

 세상의 흐름에 갈아타지 못한 아날로그 정서가 구닥다리라 해도 나는 정 나누는 성가심이 편하다. 온라인에서 모집한 일회성 모임보다는 여러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하겠지만 비효율의 경계가 내겐 난해하다. 진실한 희로애락이 애틋한 구닥다리 세대인지라 비용과 마음 나누기까지 1/n로 깔끔한 계산이 불편하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사는 일로 바빠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한 친구와는 서울에서 만나고 또 한 친구와는 인천에서 보기로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묵은 숙제를 하는 듯한 홀가분함에 마음이 들뜬다. 열패감으로 상처가 된 속마음 내보여도 다 들어줄 친구와, 2017년 그래도 우리 잘 살았다 위로의 잔을 주고 받으며 송년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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