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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위의 시는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신동엽이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인 1967년에 간행한 「52인 시집」을 통해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질곡된 역사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우리 안의 허위와 위선을 ‘껍데기’라는 시어를 빗대어 통렬하게 비판했다. 마지막 연의 ‘쇠붙이’는 껍데기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폭력, 군사, 무력, 전쟁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껍데기’는 거짓, 위선, 불의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시는 아직도 우리의 귓전을 아프게 때린다. 여전히 우리 주위에 껍데기들이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팔아 사리사욕을 챙기는 이들, 작은 이익을 위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이들, 아부와 요령으로만 세상을 사는 이들, 경쟁자를 반칙으로 넘어뜨리고 앞서나가는 이들, 약자를 짓밟는 이들, 권력에 빌붙어 부와 권세를 탐하는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지난 1993년에 나온 유행가(신신애 씨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의 노랫말 속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통해 세태를 풍자하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사정은 그때보다 더 악화된 것 같다.

 지난 18일 송년회 모임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는 누구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한 최근 성균관대 총동창회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자랑스런 성균인상’ 수상자로 선정한 데 대해 동문들이 반대 서명으로 맞서자, 황 전 총리는 "최근 일부 언론, SNS에서 거론하는 내용들은 거의 모두 ‘가짜뉴스’이다"라며 역시 불편한 내색을 보였다. 한편,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 진경준 전 검사장이 받은 거액의 금품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뇌물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세상이 시끄럽다.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 하고 어리둥절해 하면서 ‘법의 이름으로 선언된 진실’이 과연 ‘참된 진실’인지 의아해 한다. 어차피 법으로 참된 진실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확히는 당사자 본인들만이 알고 있을 터이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천 명을 설문 조사해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파사현정은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즉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불교 삼론종의 중요 논저로 중국 수(隋)의 길장(吉藏)이 지은 「삼론현의(三論玄義)」에 실린 고사성어다. 이를 추천한 교수들은 "사견(邪見)과 사도(邪道)가 정법(正法)을 눌렀던 상황에서 시민들은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어 나라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많은 껍데기들, 짜가들이 파사현정의 밝은 빛에 의해 사그라지기를 기대한다. 깊은 반성과 참회로써 오랫동안 우리를 오도해왔던 사(邪)를 버리고 희망찬 새해에는 정(正)을 좇아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소망한다. 우선 우리 마음의 거울에 켜켜이 찌들어 있는 때와 먼지를 씻어냄으로써 맑고 깨끗한 도덕적 심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자. 법 이전에 도덕 재무장이 필요하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Jellinek)도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양심(良心)을 회복하고 좀 더 염치(廉恥) 있게 살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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