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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을까? 자신에게 득이 되는 양쪽 모두를 취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소중한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상황.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결국 하나는 잃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과 기쁨, 미련과 아쉬움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행복과 죄책감 사이의 번민을 다룬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톰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다. 그는 야누스라 불리는 무인도 외딴 섬의 등대지기를 자청하며 인간관계를 최소화한 채 홀로 지낸다. 그러나 사랑은 뜻밖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섬과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자벨에게서 위로와 안식을 느낀 톰은 그녀와 함께 야누스에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가꿔가며 행복을 키운다. 허나 새 생명의 기쁨은 허락되지 않았다.

 연이은 두 번의 유산으로 황폐해져 가는 이자벨 앞에 환청처럼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파도에 떠밀려 외딴 섬에 도착한 보트 안에는 생명으로 요동치는 아기, 루시가 있었다. 이에 이자벨은 운명처럼 나타난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사랑으로 키운다. 모든 아픔과 상실을 걷어내고 행복과 기쁨만을 안겨준 루시는 동시에 번민과 죄의식의 이름이 된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 완벽한 가정을 이룬 이들 앞에 친모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이 가족은 가혹한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중심 공간인 무인도는 야누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門)의 수호신으로 앞뒤를 모두 지킨다는 의미를 담아 두 얼굴의 신으로 묘사된다.

 야누스의 양면성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타포로 작용하는데, 가장 행복한 신혼시기에 유산이라는 상실을 겪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이들 앞에 새 생명 ‘루시’가 단비처럼 내려왔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부가 루시에게서 받은 기쁨이 컸던 만큼 다른 한쪽의 상실감 또한 깊었다.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떠난 남편과 아이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던 친모는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 이처럼 상반된 두 개의 감정과 상황이 야누스처럼 공존했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이들은 모두 취할 수가 없었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선택의 고뇌를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너머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감정 속에서 겪어야 하는 딜레마를 그렸다. 서사적 완성도와 함께 이 영화는 파도, 바다, 바람 등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청각적으로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은 결국 한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부의 결정으로 마무리 된다. 변화된 부부의 삶과는 달리 여전히 밀려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파도의 물결은 시린 빛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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