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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현 한국해양경찰학회 홍보이사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임에도 육지를 중시하고 바다를 경시하는 풍조가 강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수군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세(戰勢)에 따라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해체 명령을 수시로 받았고, 이순신 제독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지켰음에도 돌아오는 건 모략과 누명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한 지금에도 그러한 현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맹자(孟子)는 하늘의 때(天時)와 땅의 이로움(地利), 사람의 화합(人和)이라는 3가지를 중시했다. 손자(孫子)도 전쟁 등 재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야(晝夜), 기상(氣象) 등 자연현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3일 발생한 영흥도 낚시어선 사고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구조대원들의 경우 말 못할 정신적 후유증과 자괴감에 이중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한다. 비바람이 치던 영하의 이른 새벽, 영흥도 사고현장에 출동 후 거센 물살과 갯벌 흙으로 인해 코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사투를 벌였던 해경대원들은 ‘낚시객 15명 사망’이라는 결과로 졸지에 죄인 취급을 받게 됐단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흑백논리와 남을 탓하는 군중심리, 잘 알지 못하면서 상식으로 다 안다는 착각, 희생양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집단 심리, 말 잘하는 비전문가들이 종편 프로의 패널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현실, 언론이 보여주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자동적 사고, 옳은 것을 믿기보다 옳다고 여기는 것을 믿으려는 심리구조 등이 만연해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해양으로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이에 따라 해양에서의 사건사고도 증가할 것이다. 인명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의 실상과 원인이 규명되기도 전에 결과만을 놓고 구조대원들에 대한 법적 책임부터 운운한다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조사 결과 구조대원이 출동을 회피했다든지, 고의로 직무를 유기했다든지 하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이후에 법적 책임을 지워도 늦지 않다. CCTV 영상을 보여주며 구조대원이 늑장대응을 했다는 특종보도는 마치 범행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띤 구조대원의 절박한 마음을 오히려 죄인의 심리로 왜곡해 만 천하에 공표하기에 충분했다. 심리학적으로 생각해보자. 고난도의 임무를 맡은 구조대원에게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단죄를 하고, 만약 살리면 벌을 면해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구조대원은 사람을 구하러 가는 길이 마치 자신이 죽으러 가는 길처럼 느껴질 것이며 경직된 상태로 구조에 임하게 된다면 타인의 목숨은커녕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소방과 해경이라는 양대 구조 조직이 있다. 소방대원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고생하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우호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게 됐다. 다만 해경은 밤새워 중국 어선과 몸싸움을 벌이고 차디찬 바다에 들어가 익수자를 구조한 뒤 언 몸을 녹이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다반사임에도 늘 바다에 떠서 일하다 보니 언론이나 국민들이 알지 못할 따름이다. 해경구조대원은 육상의 경찰·소방과 달리 하루 종일 파도·배멀미라는 환경과 싸우고, 최대 9m라는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해야 하며, 경찰(11만 명)과 소방(4만 명)을 합친 15만 명의 6.6%에 불과한 1만여 명의 인력이 육지면적의 4.5배가 넘는 해양을 담당하는 등 변화무쌍하리만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일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동안 음지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였음에도 소외되고 오해받아 온 해양구조대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자 미래사회의 재난에 대비한 가장 든든한 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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