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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이룬 것도 없이 벌써 한 해의 끝자락까지 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올 한 해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 예부터 세월의 빠름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주지하고 있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느니, ‘세월은 쏜 살 같이 흐른다’는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시간의 빠름을 표현한 문구 중 「장자(莊子)」 와 「사기(史記)」 에 나오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는 성어(成語)가 단연 압권(壓卷)이라 생각한다. 이는 흰 망아지가 빠르게 내닫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일컫는 말이다.

 「장자」 지북유(知北游)편에, 공자(孔子)가 노담(老聃 : 노자)에게 묻기를 "오늘은 한가하니 지극한 도(至道)에 대해 물어봅니다"라고 하자 노담이 답하는 말 중에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 있는 동안은 흰 망아지가 틈바구니를 지나가는 것처럼(若白駒之過隙) 짧아 잠깐일 뿐이네, 빨리도 이 세상에 태어 났다가 급히도 이 세상을 떠나가네…."라는 표현이 보인다.

 「사기」 유후세가(留侯世家)편에도 유후(留侯) 장량(張良)이 "세치의 혀로 황제를 위해 스승이 되어 식읍이 만호이고 작위는 열후이니, 이는 평민이 최고에 오른 것이니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것이다. 세속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자 할 뿐이다" 하고는 벽곡(오곡을 먹지 않는 양생술)을 배우고 도인(導引)을 행하여 몸을 가벼이 했다.

 여후(呂后)는 유후에게 감동해 그에게 억지로 먹게 하며 말했다. "사람이 한세상 살아가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은데(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어찌하여 스스로 이처럼 고통스러워 합니까?"

 옛 사람들도 이처럼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덧없음을 깨닫고 애써 초연한 척하곤 했다.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은 그의 시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었다가는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토록 흐르는 나그네(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 하고 "옛 사람들이 밤에 촛불을 잡고 논 것은 진실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였다"라고 노래했다.

 열흘 붉은 꽃 없다. 천하를 손에 쥐었던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도 만년에 뱃놀이를 하면서 ‘추풍사(秋風辭)’를 지어 "젊음이 언제였는고 이내 늙음을 어이하리(少壯幾時兮奈老何)" 하고 인생이 짧음을 한탄했다.

 필자가 연전에 다녀오기도 했던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마우이 섬에 3천55m 높이의 할레아칼라산이 있다. 그곳 주민들은 하루 해가 너무 짧아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태양이 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달라고 마우이 신에게 빌었다. 마우이는 농부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밧줄로 태양을 산에 묶기까지 했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마우이는 세계에서 일출 시각이 빠르고 일몰 시각이 늦어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한다. 하지만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다.

 필자도 언제부터인가 이해인 시인의 ‘12월의 엽서’라는 시를 읽고 새해 달력은 가능한 늦게 걸곤 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어제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벽에 걸었다. 아직도 오늘, 내일, 모레하며 새해까지는 사흘이나 남았다고 위로하고 있지만….

 중국의 지셴린(季羨林)은 도연명(陶淵明)의 ‘신석(神釋)’ 이란 시의 끝 자락 부분을 「다 지나간다」 라는 제하의 저서 권두에 인용,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라고 읊조렸다. 그는 이어 늘 궁금한 단어가 ‘인생’이었다고 전제하고 ‘나를 가두지 말고 차츰차츰 나아가라’, ‘지나가는 생의 옷자락을 놔줘라’ 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다 해도 그의 말대로 가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만 한다면 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웃으며 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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