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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씨름한 과거 교훈삼아 행복한 삶 전도사로 레디, 액션

회계전문가에서 사회단체 수장으로 변신한 이미선 ‘어울림’ 대표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2018년 01월 02일 화요일 제7면

‘잔 다르크(Jeanne d’Arc)’ 하면 우선 강인한 여성상으로 떠오른다. 그녀는 시골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소녀였다. 16살 즈음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전사로 거듭났다. 그녀의 신념은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을 종식시켰다. ‘잔 다르크’는 성격유형 검사로 유명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에서 자신의 이상에 대한 정열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이미선 남한산성 쉼터 ‘어울림’ 대표를 보면 ‘잔 다르크’를 연상케 한다. 이 대표도 어릴 적 시골학교의 주산 대표였다. 은행원을 거쳐 한국전력 회계 담당, 상업고 교사, 외국계 기업 회계전문가 등 20년 가까이 회계 분야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숫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변화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그 열망이 안정적인 직장을 뛰어 나오게 했다. 이 대표는 적진을 통과하는 ‘잔 다르크’처럼 전국 8도를 돌며 사회단체를 이끌었다. 심리 상담과 진로 상담 분야 등의 저변 확대에 일조했다. 일보다 사람을 우선하며 달려온 그녀만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깡촌 학교의 주산 대표가 회계전문가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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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지만 사춘기를 겪으며 경쟁에 대한 회의가 들더군요. 그러다 고2 때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게 됐고, 그게 제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어요."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주산 실력이 뛰어나 익산초 대표로 전국 주산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작은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관심과 흥미보다 성적을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지쳐갔다. 어린 마음에도 교육 현실에 대한 회의가 들며 학업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됐다. 개인적인 목표보다 다수의 이익이나 협동에 관심이 많던 그녀였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내와 용기를 배웠어요. 제 자신부터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이 대표는 우선 현실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었다. 고교 3학년 때 주산 국가대표로 일본 원정 경기에 나서 나눗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해 조흥은행에 실습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계산에 탁월해 총 1일 입금액 200억 원의 예산을 최종 정산하는 일도 했지만 잔심부름에 시달렸다. 그녀가 여직원이라는 이유에서다.

"업무와 관계없이 여직원이면 으레 잔심부름을 시키는 게 당시 사회 분위기였어요. 선배들에게 겁도 없이 이런 불합리한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죠."

이 대표는 당시 은행에서 인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지 않자, 집행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200명의 보너스를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새벽 2시까지 집계와 결산이 반복되는 은행업무 속에서는 야간대학 과정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활로를 찾고자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은행과 달리, 몇 장의 전표를 다루는 일이라 여유가 생겼지만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는 그 당시 급여는 좋았지만 너무 편안한 것이 성격상 오히려 불편했다고 회고한다.

의미 있는 일을 찾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예일여상 주산 교사로 들어갔지만 학생들에게 인생의 모델로서의 역할을 할 자신은 없었다. 다시 사회 경험을 쌓고 돌아 올 거라 다짐했지만 주산학원, 팬시전문점 등 손대는 것마다 실패했다. 전열을 가다듬고자 외국계 기업에 재취업해 10년 넘게 회계전문가로 일했다. 그녀의 나이 39살이었다.

# 사회단체 수장으로 인간의 변화를 이끄는 삶

"사회생활하며 많은 걸 깨달았지만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의문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공동의 목표보다 사리사욕에 더 신경 쓰는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었어요."

이 대표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1996년 인간의 이해, 심리, 상담기술 등을 교육하는 지금의 한국심성교육개발원을 설립했다. 교단에 섰던 경험을 살려 교사들의 직무 연수부터 종교지도자, 사회복지사 등 전문 프로그램과 강좌를 열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비영리단체 설립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소명이었다. 그동안 불편한 옷을 입고 있던 것처럼 실패를 거듭하던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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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는 독서 심리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갖고 성남지역 도서관을 시작으로 독서 심리치료 홍보에 나섰다. 이후 경기도에 있는 20여 개 도서관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2008년부터는 안산과 부천지역 경찰서와 연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 2011년에는 청소년 멘토링 사업의 일환으로 성남지역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리더십 향상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도 했다. 한국심성교육개발원은 심리상담 분야의 일자리 등 그 저변을 확대하는데 씨앗과 같은 일을 해왔다. 경기도 내 여성인력센터를 통해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재취업 프로그램도 운영한 바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기술을 교육하는 곳으로, 개발한 프로그램 모두 이 대표가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조직 내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 인생 3모작을 준비하며

"비영리단체 설립 후 2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지금의 단체가 있기까지 제 경험이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이 길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고 예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전력을 다했죠."

이 대표는 현재 남한산성 지수당 앞에 위치한 쉼터 ‘어울림’ 대표로서 인생 3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쉼터는 베이비 부머 세대 중년들이 모여 서로 간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도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의 교육과 연수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 바른 먹거리 전도사 역할을 할 ‘굿피플 라이프 코칭센터’를 열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잉여농산물 나눔, 경기도가 추구하는 공유경제 등 건강한 나눔 먹거리와 행복한 삶을 위한 귀한 사역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정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치유의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어울어지는 삶을 소망한다. 언제든지 찾아오시면 차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다"며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걸어왔고,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새해 희망을 말했다.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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