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정유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가고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과 구속, 장미대선을 통한 새 정부 탄생, 북한의 미 대륙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 추진에 따른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 고조 등 그야말로 국내외적으로 핵폭탄급 사건이 줄 이은 한 해였다.

오죽하면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프랑스 정부 담당자의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지난 11월 초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무슨 일로 나왔냐고 물으니 미국에 있는 유태인 사업 친구들이 내년에 한국에서 전쟁이 날 확률이 높으니 한국에 남아 있는 재산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나왔다고 속 이야기를 들려 줬다.

미국 현지나 외국에서 보는 한반도의 정세가 언제나 전쟁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 온 것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그의 언행이 예측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언행 역시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어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민의 상당수가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며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것이 현실화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북핵이 제재와 대화로 해결이 안 되고 북한의 미사일이 미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경우 미국민의 상당수는 핵전쟁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무술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절대 녹녹하지 않다. 당장 평창 올림픽을 무사히 치러야 하고 올림픽 이후 미북 간의 핵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확인될 경우 상황은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접어들 확률이 크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이 어려움이 많았지만 잘 극복해왔고 이를 외국에서도 평가하는 것 같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정한 2017년 한 해의 국가들(countries of the year)을 선정하는 데에 우리나라가 프랑스 등과 같이 선정된 배경을 보니 우리가 마주한 북핵 위기나 대통령 탄핵 등 어려운 상황을 국민이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한 것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가 스스로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자만에 빠져도 안 되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게 아닐까?

북핵 위기가 새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북핵 위기는 결코 우리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다자적 해결 방식이 중요하다. 유엔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항상 우리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은 데에 기인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에서 분명해진 소위 신고립주의 경향은 다자주의나 지역주의에 기초한 국제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 준다.

 북핵 위기의 해결은 결국 미국과 중국 간의 신글로벌 질서 구축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미중이 타협하는 차원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이 상황을 우리는 구경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 문제에 관객으로 머물 경우 코리아 패싱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고 과거 열강이 한반도를 자기네 입맛대로 주물렀던 역사적 사례가 반복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미중 간의 중재와 조정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과소평가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데에 있다.

 현 정부는 처음에 소위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워 북핵문제를 한국 주도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가 반발이 일자 접은 바 있다. 북핵 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다자적 접근에서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다. ‘동북아협력 간사론’을 내세워 우리가 미중을 포함한 동북아 안보협력체를 구축하는 데에 간사 역할을 하는 한 해가 된다면 진정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무술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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