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작가가 자기 삶을 반추해 그려내는 이야기는 생생함이 실린다. 물론, 이들이 ‘극(劇)’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가공이 필요하지만 깊은 어느 구석 한편에는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픽션이지만 감동은 논픽션처럼 전해 온다.

현직교사인 김호준이 최근 펴 낸 소설 「디그요정(양철북 刊)」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19년째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몸 담고 있는 그는 우리 청년들의 고민과 방황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때론 풍자적으로 때론 해학적으로 때론 그냥 유쾌하고 통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냈다. 등장 인물이 ‘수능’인 것부터 눈길을 끈다.

파릇파릇 열여덟 청춘이건만 이미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아이 ‘수능’, 공부 말고도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음을 배구로 가르쳐주고 싶은 의욕 넘치는 담임 ‘봉수’. 공부 포기, 부모 포기 그리고 친구마저 포기한 채 외톨이로 지내는 수능이의 소원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이 멎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기력 속으로 빠져드는 수능이에게도 혈기 왕성한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중요 신체부위다. 시도 때도 없이 힘이 실리는 바람에 그만 여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딱 걸려 망신을 당하고 ‘발기 수능’이란 별명까지 얻는다.

「디그요정」은 이처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무기력에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생애에서 가장 활기찬 시기를 맞은 이팔청춘들이 어째서 생기를 잃고 시든 배춧잎처럼 지낼 수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삭막한 닭장 같은 교실에 처박혀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과 순조롭게 공부를 따라가는 몇 명의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수업 탓에 그저 들러리로 방치된 채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는 선생 봉수가 있다. 담임 봉수의 부단한 노력과 살신성인의 자세로(실제로 쓰러지기도 하면서) 가르치는 배구 덕분에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눈빛을 반짝인다.

특히 저자는 배구 기술 가운데 ‘디그’에 주목한다. 자신의 몸을 스펀지처럼 만들어 어떤 강력한 공이라도 받아내는 디그는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담임 봉수는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냉대와 상처에 지레 겁먹고 외면하거나 아파하지 말고 스펀지처럼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쳐 내길 바라며 ‘디그요정’이 되라고 닦달한다.

물론 아이들이 단박에 ‘디그요정’으로 변신할 리 없다. 산적 같은 담임 봉수와 찌질한 아이들이 한 번쯤 날아보려고 애쓰는 과정이 마치 좌충우돌 한 편의 코미디처럼 펼쳐진다.

저자인 김호준 교사는 "스스로 뒤쳐지고 싶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담임 봉수를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며 "지금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아이들의 마음에 삶에 대한 긍정성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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