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훈.jpg
▲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외전이라 제목을 끄집어낸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 별로 논하고 싶지 않던 분야인 탓이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관심도 크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이마저도 그냥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본의 아니게 곱씹게 됐다. 차라리 한마디라도 하고 지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렸을 적, 정치라는 글자를 잘 못 알았다. 정치가 한자로 ‘正治’라 알고 있었다. 즉, 바르게 다스리는 게 정치라고 머릿속에 입력해 놨다. 이는 속내에 있던 그러한 바람과 글자 음의 유사성이 만난 오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랬다. 몇 주 전 만난 한 정치인사가 이런 일화를 꺼냈다. 종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사찰에 가서 1박도 해 보고, 성당에 가서 성가도 부르고, 교회에 가서 기도문도 읽어봤다. 모든 신자들과도 만났다. 배척하거나 한 종교에 치우칠 수가 없다. 물론, 개인적인 종교야 있지만 정치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일면 수긍은 갔다. 고개도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측은지심(惻隱之心)마저 들었다. 종교라는 건 한 예일 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나 또한 몸소 깨닫고 있다. 여기에 1분 1초 방심하지 않고 상대방의 비위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몸서리가 쳤다. ‘아, 누가 하라 해도 못 할 짓이리라.’ 정치인사 또한 사람인지라 다양한 방식의 정치형태를 보일테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하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정치인사들이 때론 대단한 사람들로 보이곤 한다. 과거 가족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가치를 실현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동적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보다가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이 있다. 사안마다 조금씩 다르게 받아 들이고 판단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하는 일들 말이다. 그런 일이 바로 지난해 연말,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남경필 지사의 ‘경기도를 포기하겠다’는 식의 발언이다. ‘식’이란 표현은 직접적으로 듣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쪽 담당도 아니기 때문에 취재를 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언론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식’은 맞다. 처음 기사를 접한 순간 무릎부터 쳤다. 그가 합당해서? 가당치도 않다. 그의 아이디어가 기가 막혀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단, 그가 어떤 주장을 펼쳤는 지 꼼꼼히 살펴 본 후 두 가지 이미지가 머리를 스쳤다. 하나는 참모진이 별로인 것 같다. 이런 발언을 할 때까지 뭐했나. 둘은 본인도 참 힘들겠다. 앞서 말한 측은지심이다. 무릎을 쳤다는 건 기사에 답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남 지사의 ‘광역 서울도’가 아닌 ‘광역 경기도’는 왜 안 되냐는 반문이다. 되레 광역 경기도였다면 서울의 반발은 살 지언정 경기도 내부의 등돌림까지는 막을 수 있었으리라. 근거 또한 자명하다.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다. 굉장히 단순한 성찰이면 가능하다. ‘서울’이란 단어는 사실 지명은 아니었다. 광복 이후 고유명사가 됐지만 이전에는 수도(首都)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경기(京畿)는 다르다. 이미 ‘서울(대명사 시절) 주변에 이르는 지역’으로 올해 경기 정명(定名) ‘경기천년’이 된다. 경기도는 물론, 산하기관 역시 수년 전부터 경기천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그 수장 스스로가 경기도를 포기하겠단다. 어찌 한심하지 않을까. 이는 마치 대한민국 건국일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로 보느냐 광복절 이후냐의 왜곡된 논의와도 견줄 만하다. 광복절 이후로 본다면 이전 대한민국은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친일파의 행적도 사라진다. 나라가 없는 데 어떻게 친일과 친한을 가르겠는가. 이런 꼼수를 쓰는 주장은 정치도 아니다. 하나 더, 천 번 양보해 남 지사가 말한 광역서울도의 내용이 경기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순수성에서 나왔다고 치자. 형식이 잘못됐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 앞서지 않는다.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래서 광역 경기도를 고려해야 했다. 이 글의 제목이 부제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은 두 글자의 제목이 형식이어야 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