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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준상 서정대학교 창업전담교수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며 4자성어 하나를 새긴다. 중국 송나라 때 선종(禪宗)의 대표적 불서(佛書)인 벽암록(碧巖錄)에 수록된 공안으로 줄탁동기(口卒啄同機)가 있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중에 기한이 차면, 알 속의 병아리가 그 껍질을 톡톡 쳐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걸 어미 닭에게 알려 주는 데 이것을 줄(口卒 : 떠들 줄)이라 한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쪼아 껍질을 깨뜨려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게 도와주는 데 이것을 탁(啄: 쫄 탁)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줄과 탁의 시간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줄탁동기란 안에서 병아리가 쪼아대는 줄의 시간과 밖에서 어미 닭이 쪼아 알을 깨뜨리는 탁의 시간을 맞춰야 온전한 병아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이른다.

 지난 2009년 1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인물에 의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암호화폐(cryptocurrency)인 비트코인이 발행됐다. 2천100만 개를 한도로 설계돼 현재 약 1천650만 개가 발행된 비트코인은 매 10분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트코인 거래를 암호화해 1개의 블록을 만들고, 이를 계속 연결(체인화)해 나가면서 모든 거래자들이 그 거래 장부를 공유하는 분권화 방식을 적용한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암호화폐의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천여 종에 달하며, 그 중 800여 종은 100여 군데의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

 암호화폐는 지금 화폐로서 존재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지불 기능 측면. 암호화폐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2027년에는 인터넷거래의 10% 정도가 암호화페로 거래될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가격기능 측면에서 보면, 화폐는 자체의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암호화폐 가격은 암호화폐의 화폐로서의 가치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성은 암호화폐의 사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그 자체의 가치가 계속 커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길게 보면 암호화폐의 가치가 결국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그때는 본격적으로 다른 재화나 용역에 대한 가격 기능을 해 낼 수 있다.

 셋째, 가치저장 기능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가격변동은 기존 중앙은행의 시뇨리지(Seigniorage : 발권은행의 화폐제조차익)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의 성격을 띤다. 다만 발권은행의 그것은 발행되면서 확정돼 왔지만 암호화폐의 시뇨리지는 발행 시에 확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고 있다.(현재의 암호화폐의 가격변동성은 거기에 근거한다)

 현재 암호화폐는 1세대인 비트코인, 2세대인 이더리움을 거쳐 벌써 3세대로 진화 중이다. 문제는 현재 거래되거나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암호화폐 중 한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는 화폐로서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버려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 그 가치는 ‘0’으로 귀결된다. (암호화폐는 결국 거래의 ‘수단’일 뿐 사고 파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화폐로서 기능하는, 살아남아 전 세계적인 유통수단으로 작동하게 될 암호화폐는 그 가치가 상상을 불허하게 될 것이다.(암호화폐를 국가적으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암호화폐가 디지털세상에서 화폐로서 기능한다면 결제, 송금, 환전 등 많은 기능들을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P2P 거래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에 기존의 금융시스템은 일대 변혁이 불가피하다. 더불어 주식거래 시스템, 펀드해지 시스템 등 여러 금융거래 시스템의 결제 기간(2~3일)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게 될 것이다. 또, 블록체인은 해킹이 불가능한 점을 살려 IOT나 드론, 자율주행과 같은 분야에 사용하거나 각 개인의 DNA를 블록체인에 저장해 의약품 개발에 이용하는 등 많은 다른 사업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의 문제. 이는 긴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섣부른 판단은 오히려 디지털 세상에서의 시뇨리지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화폐로서 가능성을 보이는 똑똑한(?) 암호화폐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둘째, 블록체인 기술. 이는 빅데이터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방향과 범위를 결정지을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여러 산업에 적용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나 아쉽게도 올해 예산에는 별로 반영이 되지 않은 듯하다.

 앞에 언급한 줄탁동기(口卒啄同機)를 새기며 섣부른 규제나 무관심보다 때를 맞춰 탁(啄:호응)하는 당국의 적극적 자세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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