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채(蕩平菜)는 영조(英祖)가 신하들과 함께 탕평책(蕩平策)에 대해 논의하던 자리에 나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음식으로 대표적인 음식으로 흰 청포묵을 기본으로 하되, 고기볶음과 푸른색 미나리, 검은 김을 섞어 만든 묵무침 요리가 바로 탕평채이다. 탕평채에는 여러 당을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영조의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동양에서 서쪽은 흰색(白), 동쪽은 푸른색(靑), 남쪽은 붉은색(赤), 북쪽은 검은색(黑)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각각 서인, 동인, 남인, 북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영조는 각 붕당을 상징하는 색을 담은 요리에 탕평채(蕩平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는 여인 중 가장 낮은 계급에 속했던 ‘무수리’를 어머니로 두었던 불행한 왕으로, 영조는 어머니가 다른 형이었던 왕 경종이 죽자 그를 독살시켰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왕에 등극했다.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은 영조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곤 했는데,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소론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가 자기의 자리를 넘본다는 심한 오해에 시달려 급기야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야 말았는데, 이를 뒤늦게 후회하게 된 영조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동시에 당파가 아닌, 인물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탕평책을 정책으로 삼았다.

 원래 ‘탕평’이란 중국 고대 문화의 원류를 담고 있는 서경에 나오는 ‘왕도탕탕 왕도평평’에서 따온 구절로 당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왕의 의지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말로, 영조는 ‘탕평채’라는 음식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함으로써 그 뜻을 관철시켰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탕평’(蕩平)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으며, 이러한 의지를 드러내는 비석이 1742년 성균관 앞에 세운 탕평비(蕩平碑)다. 최근 정부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 대다수는 인물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정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정치권을 바라는 것이 꿈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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