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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최근 금융마케팅 전략을 강의하면서 예전과 달리 금융인에게 가장 어렵고 무거운 주제가 ‘걱정의 벽(wall of worry)’을 넘지 못하고 토네이도마냥 부분적, 국지적 돌풍으로 회자되고 있음을 본다. AI·빅데이터로 무장된 로봇이 은행 창구에서 눈을 깜빡이며 자산관리 상담사 같은 자세로 앉아 있고, 손 안에 컴퓨터 모빌리티로 금융 거래 대부분의 일을 처리한다. 지문과 홍채, 음성으로 신규 거래는 물론 이체와 카드 발급, 지급 결제, 외환 송금, 대출도 가능하다. 불과 1년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 국내 극장에서 지켜 본 ‘2018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언제나 그렇듯 지휘자와 연주자, 관객이 눈을 마주 보고 호흡까지 같이하며 공감과 상생의 멋진 장면을 보여 주었다. 이렇듯 세상은 아날로그를 바탕으로 디지털 금융, 음악, 인공의사 왓슨까지 이제 AI는 우리 바로 곁에서 우리와 같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 된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선정’ 자료에서 두 가지 제목이 눈에 들어 온다. 하나는 돈 탭스콧의 「블록체인 혁명」이고, 또 하나는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시대는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파악해 미래를 조망하는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과 문명의 관점이 의도적인 차원에서 다시 조명되고 그 방향성에 대한 좌표가 거의 빛의 속도로 제시되고 있다.

 두 책 다 정보통신기술 등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따른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고 새로운 기술의 혁신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토록 만들어 준다. 「블록체인 혁명」은 AI와 빅데이터 시대 금융의 미래를 좌우할 변화를 이야기하며 블록체인 개념과 본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때 맞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열풍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대치 관점에서 본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 기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 아날로그의 상징인 ‘몰스킨’ 다이어리에 열광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디지털 시대를 수용하면서도 아날로그적 기본과 가치, 본질과 회기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 내고 있다.

 미래를 열어가며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면 그 역시 본질과 기본에 대한 본능적 생존전략인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강과 돈(정보) 두 축의 구심점이 AI와 빅데이터로 급속하게 바뀌어가고 있지만 치명적 위협은 아니며 기회가 공존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고 단호하게 이해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데이터 축적이나 분석도 중요하지만 의사가 보는 환자의 눈빛, 안색, 태도나 환경 같은 아날로그적 관심도 치료나 진료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이다. 금융 역시 기계적, 사무적 단순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인적 관계자산, 거래 관행, 고객 인성도 이에 못지 않다.

 ‘비슷한 것’을 ‘비슷한 것’끼리 묶어 놓고 들여다 본다는, 그래서 카테고리를 만들고 알고리즘으로 거래 제안을 한다는 빅데이터는 시간적·물리적 거래 행태나 특징, 추세, 빈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고객 각자 개인적 삶의 본바탕을 기저로 이뤄내는 인간적 ‘거래’는 그 상황의 미묘함을 AI가 절대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 혁신은 편리하고 역할을 대체할 수 있지만 기술 집행자의 철학이나 감정, 보안이나 정보관리 등 잘못되면 엄청난 혼란도 야기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 금융영업은 ‘아웃바운드’가 확실한 방향이며 아웃바운드는 ‘대면력’이 최고의 무기다. 대면력은 적극성이 반드시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에, 즈음하여 고객 응대의 도식적 종래의 기능보다는 인문 위주의 은행원 멘털, 마인드 셋 강화를 위한 ‘새로운 재교육(retraining) 방식’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야 AI 시대에 균형 잡힌 방식이나 인문성으로 하이터치 영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키워진다. 그냥 기계가 다 해주는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쩌지?"라는 ‘걱정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은행원의 아날로그식 고객 대면력을 본격적으로 키워 가야 할 시기며 미래는 틀림없는 ‘사람 대 사람의 시대’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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