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누구인가’, ‘가족은 무엇인가’, ‘가난과 부의 대물림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살면서 문득 문득 생각하는 난제들이다. 한 TV 드라마가 이 같은 거대 담론을 알기 쉬운 언어와 ‘감성적’ 영상으로 포장해 다루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삶을 다룬 지상파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얘기다. 주말 저녁 전국에서 TV를 보는 국민의 절반(43.2%)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종편·케이블 TV의 등장을 고려하면 지상파 3사가 방송을 독점하던 시절 방영됐던 ‘모래시계’(64.5%)에 버금간다.

혹자는 세기(世紀)가 21번이나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유지되는 계급사회를 전도하거나 변혁하려 들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에 분노하기도 한다. 또 가진 자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 구성에 분노하고 치를 떠는 시청자들도 있다. 이 이야기도 결국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흙수저 아버지와 철이 덜 든 그의 자식들, 그리고 가난으로 파편화된 가족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에 대다수 시청자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작가는 드라마 기획 의도를 통해 ‘금수저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수많은 가장들과 금수저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뚜벅뚜벅 자기의 길을 가고 있을 이들이 잠시라도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상처투성이가 돼 아프고 쓰리기만 한 흙수저의 삶을 담아 보려는 작가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본력으로 한 인간의 가치가 완전히 치환돼 버린,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금권만능주의는 단순히 공감하고 대리만족하고 위안받을 개재가 아니다. 이는 자라나는 후대를 위해서도 동의할 수도 동의해서도 안되는 위험한 ‘프레임’이다. 한 사람은 금력뿐 아니라 성격과 재능, 인성 등으로 종합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흙수저가(家)의 최고 책임자인 아버지(서태수)는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의 자위적 패배주의로 자신과 모두의 삶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가난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금력뿐만 아니라 다각도의 치유 방법 속에서 찾아져야 했고 자식들은 물신주의에서 시작해 물신주의로 끝나는 우리 사회의 프레임을 ‘타고 놀 수 있도록’ 강하게 교육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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