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 대학자 윤회의 젊었을 적 이야기다. 하루는 시골에 갈 일이 있어 길을 나섰는데 그만 날이 저물었다. 어쩔 수 없어 여관에 묵으려 하는데 그의 인상착의가 험상궂었는지 아니면 여관비를 낼 돈이 없어 보였는지 주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 투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여관 마당에 쭈그려 앉아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집 아이가 커다란 진주를 들고 나와 놀다 마당에 떨어뜨렸는데, 때마침 옆에 있던 커다란 거위가 달려와 냉큼 삼켜버렸다. 이를 모르는 아이는 아버지에게 진주를 잃어버렸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아이가 잃어버린 진주를 찾아 마당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 지경이 되자 주인은 마당에 앉아 있던 윤회를 의심하게 됐고, 그를 묶은 뒤 날이 밝는 대로 관가에 알리기로 했다.

 만약 보통사람이었다면 당장 거위의 배를 갈라 확인해보자고 했겠지만, 윤회는 단지 "저 거위를 내 곁에 묶어 두라"고만 했다. 날이 밝자 거위가 배설을 하는데 그 배설물 속에서 아이가 잃어버린 진주가 나왔다. 주인은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왜 어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윤회는 "만일 내가 어제 말했다면 거위의 배를 갈라 보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됨을 참고 기다렸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친구가 농산물을 파는 작은 가게를 하는데, 잘 차려 입은 한 여자 손님이 와서는 구입할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라고 요구한다. 죽기 살기다. 워낙 싸게 팔아 더 이상 어렵다고 하자 대뜸 "배추나 파는 주제에 빡빡하다." 봉투에 담은 물건을 휙 던지고 가버린다. 백화점 가면 비싼 물건은 정가대로 지불하면서 전통시장 가면 값싼 농산물을 악착같이 깎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분명하다. 밖에 나가 뿌연 하늘에 긴 담배 연기를 내뱉던 친구가 들어와 앉으며 입을 연다. "괜찮아. 책임질 가족이 있으니 참아야지. 열심히 돈 벌어서 저 사람보다 잘 살면 돼."

 참기 어려운 참음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라 했던가. 오늘 녀석의 참음은 윤회의 참음보다 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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