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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무위도식하는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 한다. 20대 후반 혹은 30대가 훨씬 지났는데도 주머니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 이들의 비유적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야말로 캥거루족 곁에는 이들의 삶이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애프터서비스를 책임 져주는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또 한 번 부모 없는 설움을 탓하며 거리로 내몰리는 민달팽이 족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양육시설에 기거하는 원생들이다. 핏줄이라는 가족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된 그들에게 양육시설은 하나의 가족과 같은 큰 울타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동복지법이라는 법망에 걸려 만 18세가 되는 해에는 보호 종결이라는 진단을 받고 삶의 터전이었던 양육시설에서 나와야 된다.

 현재 부모친지 없이 양육시설이나 가정 위탁, 공동생활 가정에서 보호 양육을 받고 있는 아동은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이 된다. 이 중 매년 약 2천 명에서 3천 명 정도가 시설에서 퇴소해야 한다. 물론 대학을 진학할 경우 연장해 거주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학비며 생활비 조달 문제로 대다수가 포기하고 있어 삶의 현실을 외면한 생색용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법을 근거로 할 때 성년, 즉 어른이 되어 독립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만 19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으며 후견인과 법적 조력자 없이 제반 법률 행위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만 18세는 미성년자로서 재산권을 위한 법률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그 효력이 인정되는 것이다. 양육시설에서 퇴소를 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누구 하나 돌봄 없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거처인 주거시설을 마련해야 하고 경제적 필수 조건인 신용카드도 만들어야 하는데 법률적 행위를 할 수 없는 미성년자는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미성년자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의 1년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국가로부터 버림받는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그들에 대한 사회인식은 아직도 편견적이고 부정적이며 불모지에서 어떻게 견디며 정착을 해야 하는지 대부분 고민을 하지 않는다. 양육시설은 그들이 떠났으니 그만이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법과 제도를 핑계 삼아 등한시하고 고작 후원단체와 결연 형식을 빌려 떠넘기고 있다. 그들이 평범한 청년으로 험난한 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립을 위한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튼실히 해줘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어떠한 조건으로 그들에게 준비금을 지급하고 있는가? 각 지방자치단체와 양육시설, 공동생활 가정과 가정위탁 종결 아동 등 지역과 거주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초적 지원을 위한 ‘자립정착금’과 저소득층 아동에게 건전한 사회인 육성을 위해 지원해주는 ‘아동발달 지원계좌’ 그리고 ‘시설 후원금’ 이라는 명목으로 퇴소 시에 약 500만 원에서 7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준다. 이나마도 미성년자라는 제도적 약점을 이용해 먼 친척이라는 사람이 법정대리인을 빙자해 통장관리를 하며 입금된 돈을 갈취, 알몸으로 거리로 내앉는 경우도 있다. 생애 처음으로 만져보는 목돈을 재산권에 대한 법률 행위를 스스로 못하기 때문에 허무하게 날려 버린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안다. 성인도 아닌 미성년자가 아무 대책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는데 과연 500여만 원의 정착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미성년자가 아닌 어른으로서의 독립가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선거 때가 되면 줄기차게 쏟아내는 선심성 공약들, 청년 통장과 청년수당, 청년 임대주택 등은 그들에게 있어 그림의 떡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상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어렵다. 또한 흙수저가 금수저를 물기는 더욱 어렵다. 최소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흙수저가 동수저만이라도 물게끔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18세의 어른들, 지금은 그들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받을 수 있는 자립정착금의 현실화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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