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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별탈 없는 2018년을 기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제도, 가치관 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치를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SNS를 통한 피상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되고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풍조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정신적 가치는 폄하됐다.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고유한 인간성마저도 물질을 위해 버릴 수 있는 사회현상이 만연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생명조차 쉽게 해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를 이끌어 갈 정신적 가치의 회복과 사회 개조가 절실한 상태이다.

 한때 실학(實學)이라 불렸던 조선전기의 성리학은 왕조의 초기에는 그런 대로 생동감을 갖추고 있었다. 현실 문제의 해결을 사회 경제적 개선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 윤리적 측면에서 찾았고, 지식인 관료층인 사(士)에 의한 통치를 지향함으로써 군주에 대한 도덕성 제고를 강조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더 이상 현실 지도 이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한 성리학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과도한 명분론과 관념론에 사로잡혀 민생(民生)보다는 성현의 문장에 대한 자구(字句) 해석에 더 많은 공력을 쏟았기 때문이다.

 훈구파와 사림파로 대별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이후에도 정파 간의 당리당략과 정쟁은 백성의 삶을 도탄으로 몰고 갔다. 임진년과 병자년의 환란에 속수무책이던 국방력의 문제도 군사제도와 기강의 와해보다는 대외 정보에 대한 오판과 무지에서 기인됐다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왜란을 겪은 이후에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는 호란을 겪었어도 일과성 수모이기만을 바라던 측면도 있었다. 그들이 신봉한 이데올로기로서는 더 이상 근원적인 제도 개편을 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소극적 변통만으로 대처했던 것이 정치권의 모습이었다.

 양란 후의 조선사회는 모든 분야에 걸쳐 그 부조리가 드러나면서 전면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을 필요로 했다. 통치 질서의 와해, 성리학의 한계, 사회 경제적 변화, 신분의 변동으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이 자생하더니, 일부의 뜻 있는 정치가와 재야(在野) 학자들의 자가 반성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구국구폐운동(救國救弊運動)이 일어났다. 각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던 비리와 모순을 개혁하고 경색된 현실을 타개해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하려 했다. 그들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각 분야를 개혁하고자 하는 과제들을 검토해 이른바 조선후기의 실학이 탄생했고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연결됐다.

 그들이 개선, 개혁하고자 했던 내용은 구체적인 민생의 고통과 현실의 문제였다. 그러나 상당수가 몰락지식인 출신이었던 실학자들은 자신의 현실 개혁안을 정부 당국에 제시해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와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자신의 견해를 사회의 여론으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 노력도 부족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이론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바탕도 구축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적 사유가 구체적이고 실천적 운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의 길을 걸었다.

 사회 변동은 교통통신 및 과학기술의 발달, 가치관이나 제도의 변화, 정부의 정책, 역사적 사건, 자연환경의 변화, 문화 전파, 시민운동 등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제시했던 민생 안정과 국가 개혁의 꿈이나, 현재 우리 사회 앞에 놓인 당면한 과제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보여진다. 바람직한 사회제도와 윤리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장기적, 지속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성 상실에 대한 대처 방안은 소극적인 상태여서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또 한 번 선량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비전들을 제시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현실에 입각한 정확한 판단과 해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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