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봤던 SF영화에 나온 도시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암울한 잿빛도시의 이미지가 많았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도 어두운 도시의 풍경만큼이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생기 없는 얼굴들이었다. 무술년 새해부터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뿌연 날씨 속에 너나할 것 없이 황사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공상과학 영화 속 풍경이 우리 사회에도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는 최근 하늘을 뒤덮었던 미세먼지가 4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52년 영국 런던 스모그 참사 당시와 유사한 형태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미세먼지가 높아졌지만 이후 국내 대기 정체를 겪는 등 국내 요인으로 초미세먼지가 한층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가만히 있을 정치권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 대책’의 하나로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시행하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서울도’ 어젠다를 꺼낸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를 포퓰리즘 미봉책이라고 비판하며 맞대결에 나선 데 이어 유력 정치인들도 앞다퉈 미세먼지와 관련 발언을 쏟아내며 엎치락뒤치락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공방으로 고구마보다 더 답답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학이론에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를 지낸 미국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발견한 것으로, 나비의 날갯짓처럼 초기 조건의 미세한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과학이론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폭넓게 사용된다. 중국의 산업 발달로 발생한 오염물질이 우리나라로 넘어와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 된 지 오래지만 과연 우리는 그 책임의 범주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적 삶을 외치고 있지만 말로만 친환경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을까. 우리가 환경에 무지하게 행동한 사이 발생한 미세먼지가 다른 누군가를 위협하는 공해가 되지는 않았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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