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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지난 9일의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에 따라 지금 판문점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서는 북측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문제 등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각종 실무회담이 순차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 겨울잠을 자던 곰이 새봄을 맞이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처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분홍빛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희망의 한가운데에는 북한이 과연 우리와 합의한 대로 진정성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사항들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관한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미국이 연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합동군사훈련을 무조건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자기네들이 만든 핵무기가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언뜻 들어도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남북한 간의 현안 가운데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관련해서는 납득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의 송환이라는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에는 3차례의 분단과정(1945년, 1948년, 1953년)을 거치는 동안 1천만 명이나 되는 이산가족들이 발생했고, 이들의 상봉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시급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 중의 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안은 좀처럼 해결될 계기를 찾지 못하다가 분단 30여 년이 흐른 1985년 추석에야 비로소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한에서 각각 50명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함으로써 이산가족의 상봉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이산가족 문제를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인식함에 따라 이들의 상봉문제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따오기’처럼 무심한 세월만 흘려보냈다. 물론 분단 73년이 흐르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북한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측이 북측에 비료나 쌀, 의약품 등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가물에 콩이 나듯’ 간헐적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즉 지금까지 총 20차례에 걸쳐 총 4천120가족 1만9천771명만이 단 1번씩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대면 상봉했을 뿐, 거의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헤어진 혈육과 상봉은커녕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이 어떻게 이렇듯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혈육의 얼굴을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면서 하나둘 유명을 달리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기막힌 현실을 감안해 지난 9일 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의했으나, 북측에서는 지난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류경식당 종업원 13명의 송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북측이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은 그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한국으로 입국한 사람들로, 지금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에 다니면서 청운의 큰 뜻을 펼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판에 박힌 일상생활, 그리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이중삼중의 감시 통제망을 벗어나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북한으로 다시 송환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런 비현실적인 요구를 할 것이 아니라 왜 이들이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의 곁을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기성찰과 함께 제2, 제3의 탈북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치에 더욱더 힘써야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의 식당종업원 송환 요구는 이산가족 상봉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를 전제 조건화 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에 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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