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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깍정이는 ‘밤나무, 떡갈나무 따위의 열매를 싸고 있는 술잔 모양의 받침’ 곧 ‘각두(殼斗)’를 의미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뱀을 잡는 사람을 땅꾼 외에 깍정이라고도 불렀던 모양이다. 깍정이는 후에 깍쟁이로 발음이 전화(轉化)된다.

 아무튼 뱀 잡는 사람들에게 어떤 연유로 이런 낮춤말 칭호가 붙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에 깍정이, 곧 깍쟁이에 관련한 기록이 나온다. "본래 깍쟁이는 서울의 땅꾼과 뱀장수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그들이 청계천 다리 밑이나 개울가에 움막을 짓고 살며, 엄격한 집단생활을 하면서 저잣거리에서 어리숙한 사람을 속이기도 했다고 한다. 거지를 부르는 말로 쓰여 ‘거지 깍쟁이’라는 말이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깍정이든 깍쟁이든, 이 같은 칭호가 붙은 부류는 당시 일반에서도 거의 불가촉(不可觸) 천민쯤으로 대했던 것 같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민속문화대관」에도 "땅꾼은 1950년 이전에는 가장 하층에 속하는 직업으로, 뱀을 잡으러 나가면 민가에서도 잘 수 없어 큰 다리 밑에서 숙식을 하면서 뱀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깍정이패가 인천 땅에 둘씩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별건곤」 잡지 1927년 1월호는 『현대진직업전람회(現代珍職業展覽會)』라는 기사를 통해 당시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진기한 직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인천에 깍정이가 두 패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보시요. 뱀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 잇소구려! 뱀 중에도 살모사(殺母蛇)는 몸 보하는 데에도 좃코 담든 데에 약이 된다 하야 고아 먹는 사람이 만흔 고로 살모사를 잡어다가 팔아서 먹고 산다는구려…. <중략> ‘깍정이’라는 반갑지 안흔 층호를 밧아가면서 이런 짓이라도 안하면 먹고 살 수 업는 친구가 지금 경성에 다섯 패 제물(仁川)에 두 패 수원에 한 패가 잇다 함니다."

 당시 철자를 그대로 옮겨서 읽기가 다소 번잡스럽지만,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뱀이 ‘몸 보하고 담 든데 약’이 된다는 것과, 전국의 깍정이패 가운데 서울의 다섯 패 다음으로 많은 두 패가 ‘제물(仁川)’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물’은 제물포의 속칭으로 당시에는 제물포를 흔히 ‘제물’ 혹은 ‘제물이’라고 불렀다.

 어쨌거나 제물포에 깍정이패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뱀’의 수요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제물포에는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제물포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수많은 외지 노동자들과 일확천금을 노린 미두꾼들의 집결로 ‘뱀을 수요로 할 만한 남정네’ 인구가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당시 제물포의 노동 임금은 즉시 현찰이었던 호조건과 더불어 객지 생활에서 별다른 영양 음식을 챙길 수 없는 이들 외지인들이 건강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일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에 몸보신을 위해서 너도 나도 뱀을 찾았을 듯싶다. 결국 수요가 공급을 촉진한 결과, 인천에는 뱀잡이 깍정이패가 둘이나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뱀탕집의 성황으로 이어졌으리라는 추측이다.

 「별건곤」 잡지에 제물포 뱀탕집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무렵까지 동구 금곡동 문화극장 일대와 동인천역에서 내리교회 방향으로 오르는 마루턱 중간쯤에 있었던 뱀탕집들이 그런 역사의 흔적이 아니었던가 싶다.

 기억 속의 뱀탕집들은 크고 작은 유리병 속에 여러 종류의 뱀을 서려 넣어 진열해 놓았었는데, 그 징그러운 모습 때문에 여성들은 멀리서부터 외면한 채 지나거나 아예 저만치 돌아가곤 했다. 더구나 가마솥에서 뱀을 고아내는 냄새는 역겨운 데가 있어서 미성년인 우리들 역시 그 앞을 지나치는 게 썩 내키지 않았었다. 근래 우연히 치과의사 김식만 씨가 소장한 옛 인천 사진에서 유리병 속에 뱀들을 진열해 놓은 뱀탕집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50년대 미국인이 촬영한 것으로 김 씨 역시도 사진의 장소가 문화극장 인근일 듯하다는 설명을 달고 있다. 지금은 실로 가뭇없는 이야기지만,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뱀잡이 깍정이패가 인천에 존재했었다는 특이한 이야기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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