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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희 여주시장
여주는 지난 50여 년 동안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한 도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팔당특별대책지역’, ‘개발제한구역’ 등 각종 중첩 규제로 개발이 제한돼 공업·산업 도시로 성장하지 못한 게 큰 이유다.

 남한강을 중심으로 한 수려한 자연환경, 질 좋은 명품 농산물, 세종대왕 영릉 등 92개의 역사 유적지가 자리한 여주지만, 인근 도시가 키를 늘려가는 동안 여주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비용으로 여주가 보유한 값진 자원들을 조합해 여주만의 상품을 개발하고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오랜 고민이자 화두였다.

 나는 그 해답을 ‘세종대왕’에서 찾았다. 2000년과 2014년에 펴낸「여주는 경제다」,「여주를 말하고 세종이라 답하라」에서 나는, 여주는 세종대왕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이 공감을 얻어 나는 민선 6기 여주시장으로 당선됐다. 나는 2014년 시장 취임 직후부터 현판, 현수막 등을 통해 미래 여주의 방향이 ‘세종인문도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2015년 행정적 준비를 거쳐 2016년을「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추진 원년으로 삼고, 2016년 7월 1일 선포식을 통해 여주의 청사진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는 세종대왕께서 잠들어 계신 여주시의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되찾고, 세종대왕을 활용해 새로운 방향의 도시 발전을 견인하고, ‘이름 난 여주’, ‘살기 좋은 고장 여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세종인문’라는 용어에 낯설어 했던 시민들도 교육을 통해 진의를 알게 되자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에 크게 공감해 주었다. 내국인들은 물론 해외 한글학교, 한인회 관계자는 물론,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세종대왕을 알기 위해 여주를 찾는 것을 보고, 여주라고 물을 때 왜 해답이 ‘세종대왕’인지를 이해했다.

 지난 3년 남짓은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 추진에 필요한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지역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만들고, 행정 시스템 체질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2017년에는 용역을 통해 제시된 중점사업을 포함해 지역경제, 사회복지, 문화관광, 도시개발, 교통, 건설 등 각 분야에서 관련 사업을 발굴해 총 91개 사업을 추진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척박한 토양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시기였다. 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알찬 결실을 맺기까지는 최소한 10년은 필요하다. 싹을 틔운 씨앗만을 보고 성과를 운운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짧은 시간에 쫓겨 성과내기에 급급하다 시책이 실패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지금껏 많이 보아왔다. 저출산, 고령화 등 커다란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당장의 미봉책보다는 내일을 보는 비전을 확고히 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세종대왕 또한 즉위 후 3년이 되던 해에 역관 임군례로부터 "이 따위가 무슨 대체(大體)를 아는 임금이 할 수 있겠는가"라는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래서 재위 기간에 ‘해동의 요순’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여전히, 세종인문도시가 답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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