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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도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경제·사회·문화의 조류가 바뀌면서 농업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 탈 화석·녹색성장, 삶의 질에 대한 가치 추구, 과학 기술의 융·복합 등 시대의 변화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기존의 산업을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농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농업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한국농업의 시대정신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新농본주의’이다.

 동양의 농본주의는 수천 년 동안 백성의 생활과 국가의 안전을 지탱해 온 전통적인 사상이다.

 한국의 농본주의는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통치사상으로 신봉됐고 근대화 시기에는 근대화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강조됐다.

 농본주의란 간단히 말해 ‘농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므로 인간이 식량에서 삶의 에너지를 섭취하고 농업이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인 이상, 농본주의는 매우 중요한 이념이다.

 그러나 중세 조선과 20세기의 근대화 시기가 지나간 지금, 과거와 똑같은 형태의 농본주의가 한국농업의 발전을 이끌어갈 시대정신으로서 과연 유효한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고대로부터 동양의 농업을 지배하는 정신과 서양의 농업을 지배하는 정신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유목농업인의 개인적·대립적·직선적 세계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에 비해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착농업인의 집단적·종합적·순환적 세계관이 강하게 유지돼 왔다.

 이러한 서양의 세계관은 14세기 르네상스시대 이후 서양이 주저 없이 농업보다 상업과 공업에 주력해 근대화를 이룩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착 농업인적인 세계관이 강한 동양에서는 농업을 국가통치의 근본으로 유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은 국가가 경영하는 것이었고 풍흉의 책임은 하늘의 뜻을 이어 받은 왕에게 있었다. 이러한 농본주의 전통은 20세기에도 계속 이어져서 국가가 주도하는 농촌 근대화의 한 기둥을 담당했다.

 근대화 이념이 주도하던 압축 성장기가 지나가게 되자 근대화의 그늘에 묻혀 있던 문제점이 드러나 시장과 정부, 평등과 효율성, 세계화와 정체성, 개발과 보전 등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시작됐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가가 백성의 안녕을 위해 농업에 힘써야 한다는 전통적 농본주의는 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므로 국가가 농업·농촌·농업인을 맡아 책임져야 한다는 포퓰리즘 농본주의 경향을 띠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스마트 시대의 한국은 국가보다 개인이 주체가 되는 사회이며, 대중사회이고 열린 경제를 추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스마트 시대의 농업에 꼭 맞는 新농본주의이다. 즉 국가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농본주의가 아니라 농업인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농본주의 정책이 필요하다.

 유럽이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 중심적인 사회에서 인간 중심적인 사회로 탈바꿈해 근대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한국 농업도 농업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 농업을 농업인에게 되돌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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