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냉전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을 포함해 전 세계가 오롯이 시장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화’라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파괴적 혁신’은 지난 세기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을 합친 것보다 빠르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념과 냉전이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의 속도 속에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여전히 이념과 냉전 때문에 반세기가 넘도록 노심초사하며 지내 왔듯이 인류 전체의 진일보를 표방한 기술의 발전이 너와 나의 진정한 행복과 ‘부의 재분배’까지 고려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세계를 이념과 냉전으로 양분한 19∼20세기의 전쟁들을 비롯해 역사의 모든 갈등과 반목은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보려는 패권 장악의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실리콘밸리의 유토피아적 기술 속에도 현재의 패권 유지와 확장을 위한 ‘정보의 독점’과 ‘핵심 기술의 배타적 유통’과 같은 패권주의가 내재돼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민주주의(Democracy)야말로 모든 ‘주의(主義)’들의 정점에 있으며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다수의 동의에 기반해 가장 합리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걸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 근원을 둔 이 말은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합성어이다. 이는 독재나 소수 독점과 대척하고 있으며 경제학을 제대로 몰랐던 마오쩌둥을 비롯한 공격적 평등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미래국가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했다. 촛불혁명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다수결의 원리와 사회적 경제적 평등 추구, 투표를 통한 권리행사, 집회·결사·표현의 자유, 국민 복리증진만을 위한 정부 시책, 공직자의 책임과 비판 수용, 사법제도로부터의 보호,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주의는 인류 진보의 정수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직전 정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해 옥살이를 하고 있고 현 정부도 다수의 동의에 기반한 소통의 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자체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이념과 냉전, 패권주의는 몰래 감춰 놓고 한철 흉내내는 민주주의로, 가짜 소통으로 시민들을 현혹하려 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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