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이야기다. 초나라 장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들을 위해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승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갑자기 센 바람이 불어 연회장을 밝히던 초의 불이 모두 꺼지고 만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만 있는데, 한 여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장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다. 왕이 이유를 물으니 이 여인, 어둠을 틈타 누군가 자신을 희롱했으니 당장 초를 켜 범인을 잡아달라고 청한다. 증거로 한 손에 쥐고 있던 갓끈을 내민다. 그러나 장왕, 모두의 예상을 깨고 촛불을 켜지 말라고 명한 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갓끈을 끊으라. 그러지 않는 자는 연회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갓을 쓴 사람 모두가 끈을 끊은 뒤에야 촛불이 다시 켜졌고, 결국 여인을 희롱한 범인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초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했는데, 전황이 매우 불리했다. 그때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삽시간에 전세를 뒤집는다. 전투가 끝난 후 장왕이 장수를 불러 치하하자 이 장수 왕 앞에 엎드려 고백한다. "사실은 제가 몇 년 전 연회장에서 여인을 희롱한 장수입니다. 제가 엄한 벌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 폐하의 아량으로 목숨을 건졌기에 언젠가는 이 한 목숨 바쳐 폐하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겁’의 사전적 의미는 하늘과 땅이 한 번 개벽한 때에서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동안이다. 힌두교에선 86억4천만 년을 1겁이라 한다. 불교에선 500겁의 인연이라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천 겁의 인연이라야 단 하루 동행할 기회가, 5천 겁의 인연이라야 이웃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디 귀한 인연인가. 넓은 아량과 여유로운 관용이 있어야 위대한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리더십은 풍성한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 능력보다 나를 더욱 빛내 줄 위대한 힘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