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01010000452.jpg

뮤지컬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영화로 손꼽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히어로 물과 유사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분명한 선악구도가 있으며 끝내 정의가 승리하는 서사가 그렇다.

서부 영화를 생각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한 땅, 모래 바람과 함께 굴러가는 회전초, 말을 탄 고독한 방랑자, 별 모양의 배지를 달고 있는 보안관, 빠르고 정확한 사격 솜씨 등 주로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큰 틀에서 보자면 서부극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인공이 광활한 서부를 배경으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텍사스의 쇠락한 시골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산다. 출소한지 오래지 않은 형은 최근 이혼한 동생과 어머니의 집에서 재회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라곤 말라빠진 소들과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척박한 땅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땅마저 차압 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주택담보 대출로 근근이 살아온 어머니의 대출금이 남아있기 때문에다. 이에 형제는 은행의 돈으로 은행 빚을 상환하려 한다. 즉, 은행털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최대한 인적인 드문 작은 은행만을 골라 뭉치 돈이 아닌 낱장 지폐만을 훔치는 이들의 더도 덜도 말고 대출금액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범법행위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은행의 신고로 수사하게 된 베테랑 보안관은 남다른 촉으로 수사망을 좁혀 형제를 추격한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서부극 장르가 그러하듯 미국의 역사를 반영하는 작품이다. 초기 서부영화가 미국만의 건국 신화와 문명사회를 찬양하는 방식으로 자국의 역사를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현대의 미국을 다양한 층위에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 형제가 은행강도가 되는 까닭에는 가족의 터전인 농장이 있었다. 비옥하진 않았지만 형제도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도 이 땅에서 삶을 꾸려왔다. 돌아가신 어머니 역시 농장을 담보로 겨우겨우 살아갈 만큼 이들에게 땅은 생명의 근간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땅이 차압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힘겹게 일군 삶의 터전이 은행이라는 자본, 더 나아가 해당 농장에 매장된 석유를 탐내는 기업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들을 쫓는 보안관이다. 보안관 중 한 사람이 아메리칸 인디안 혈통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 하다. 과거 서부극에서 정의의 백인이 야만의 대명사인 인디언을 내몰았다면, 이 영화는 야만이라는 이름의 범죄자에 백인을, 정의의 보안관에 인디언을 대입시켰다.

그러나 이 작품은 뒤바뀐 인종으로 과거의 이분법을 답습하는 영화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미국에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탈과 착취의 역사라는 것이다. 은행 강도가 되는 백인 형제는 아버지 대부터 일궈온 삶의 터전이 자본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지만, 그 땅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에게서 빼앗은 폭력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강자 독식체제의 미국사회를 씁쓸하지만 영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