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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식 사회부장
황해도 옹진군 동광면, 팔순을 훌쩍 넘긴 내 어머니의 고향이다. 전쟁을 피해 잠깐 피했다 오자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선 게 마지막 고향길이다. 1주일만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고 험한 피난길에 아버지는 흔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멀쩡한 고향집에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었지만 맏딸인 어머니는 그렇게 남쪽에서 천애 고아가 됐다. 16살 때 일이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북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서슬 퍼렇게 맞서는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북의 고향은 더 이상 오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 됐다. 곧 돌아올 것이라는 말에 빛바랜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해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 얼굴은 머릿속에서만 기억할 뿐이다. 그나마 반세기를 넘긴 세월이 흐르며 사랑스러운 동생들 얼굴은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그동안 어머니가 기억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유신의 수단이 되기는 했지만 통일에 대한 기대를 높였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그랬고, 1983년 온 국민의 눈물을 빼냈던 ‘남북 이산가족 찾기’가 그랬다. 어머니도 다른 이산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방송공사(KBS)가 있는 여의도를 누볐다. 빛바랜 사진과 애끓는 사연을 담은 종이 팻말이 즐비한 광장에서 혹시라도 남으로 내려왔을지 모를 가족을 찾아 8월의 뙤약볕을 헤맸다.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1만여 건의 가족 상봉을 지켜보며 "나에겐 왜 저런 복도 지지리 없느냐"고 가슴을 쳤다. 그리고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며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분단 이후 처음으로 1985년 남북한이 각각 50명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꾸려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또다시 절망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총 20차례에 걸쳐 4천120가족, 1만9천771명이 꿈에 그리던 가족과 상봉했지만 어머니는 단 한 차례도 그 대열에 포함되지 못했다. 통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그저 세상을 뜨기 전에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지난날의 그리움을 원 없이 털어놓고 가족의 정을 느끼기만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뭐가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무장한 군인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상봉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정치인도 아닌 팔순이나 구순 노인들의 가족 상봉을 왜 막는지 말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대립에 따라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보여주기 정치쇼 하듯 하나마나 한 상봉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2018년은 한국전쟁 발발 68년이 되는 해다. 그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55%가 사망했다고 한다. 신청을 시작한 1988년부터 그동안 총 13만1천여 명이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중 지금까지 7만2천여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18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상봉 신청 생존자 중 20%에 육박하는 18.9%가 90세 이상이다. 80~89세는 42.8%다. 이들이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 일이다. 살아 생전 가족과의 상봉은 고사하고 생사조차 확인하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찌 같은 하늘 아래 이 같은 비극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는 제발 이산가족의 애끓는 망향가와 가족 상봉의 열망을 잊지 않기 바란다. 이제 시간이 없다. 정치적 수사가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진정성을 담아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G20 정상회담에서 실향민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낸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평창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또다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번에는 꼭 모든 이산가족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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