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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준 나사렛국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추운 겨울,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어느 의사에게 ‘치매’가 심하다는 70대 할아버지가 의뢰됐다. 연말에 입소했는데 이후 한 달째 낮에 항상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의사가 가서 보니 실제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고 묻는 말에 눈 맞춤도 하고 간단한 대답 정도는 했으나 눈은 연신 창밖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러나 실제 할아버지는 창밖의 새들이 집을 짓고 새끼 새를 낳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면담을 통해 밝혀졌다.

 위 일화는 이른바 ‘치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지어 의료진도 갖고 있는 강한 선입견을 보여준다. 이미 병에 걸려버렸으니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환자는 별의별 행동을 다 보일 수도 있고 약이나 쓰면서 어떻게 되나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는….

 이렇게 ‘치매’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강력한 부정적인 어감을 피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아예 의료현장에서 ‘치매’라는 말을 ‘인지장애증’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치매는 더 이상 환자만의 병이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도 상당하다.

 ‘치매’는 증상일뿐 정확한 진단명은 아니며 어떤 원인에 의한 치매이냐에 따라 임상 양상에 차이가 있고 치료도 달라진다. 따라서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가 ‘치매’라는 증상보다 더 중요하다. 열이 난다는 증상으로 병원에 온 환자를 보게 되면 열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듯 ‘치매’로 표현되는 ‘인지기능장애’ 증상이 있다면, 증상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떤 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세한 병력청취와 신체검진, 뇌영상, 종합신경인지기능검사 등 진단에 필요한 검사들을 충분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지기능장애’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치매, 즉 인지기능장애는 노인의 경우 뇌의 노화에 의해서, 전신질환에 의해서, 사고 등 뇌손상에 의해서, 우울증에 의해서 등등 수백 가지 원인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환자, 보호자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면담하고 자세하게 병력을 청취하는 것이 중요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나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면담과 관련된 수가는 아주 낮게 책정되어 있다. 또한 그간에는 검사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뇌 MRI나 종합신경인지기능검사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부담이 상당했고 이 이유로 자세한 병력청취나 검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간단한 검사나 면담만으로 진단을 받고 약을 먹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최근 시행되고 있는 ‘치매국가책임제’로 인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뇌 MRI나 종합신경인지기능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게 됐다. 비용부담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중증치매의 범주에 들면 산정특례가 적용돼 비용부담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 제도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한데 처음 진단할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라는 것이다. 의사도 병력청취를 충분히 하고 가능한 검사도 다 실시해서 환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고 환자도 필요한 검사를 잘 해서 최대한 적절하게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진단과정의 병력청취와 마찬가지로 이후 치료과정에서도 환자, 가족과의 충분한 면담을 통해 그때그때 문제를 파악하고 환자, 가족을 지지하며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시스템적인 문제들 또한 차츰 해결되리라 기대해본다.

<도움말=나사렛국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희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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