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분에게서 책을 한 권 선물받았다. 도시계획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답답하다는 기자의 푸념을 흘려 듣지 않은 배려심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정석 교수의 도시설계 이야기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가 그 주인공이다. 자칫 어렵고 딱딱하고 생경한 용어와 이야기들을 마치 어린아이를 다독이듯 들려주는 덕에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도시설계의 바이블로 여기고 두고두고 읽고 또 읽어 오롯이 기자의 것으로 소화해 볼 계획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학 시간에 단 한번도 배운 적이 없는 방정식이었다. 이름하여 ‘미노베 방정식’. 기존의 도로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만약 노벨수학상이 있었다면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다.

 사설이 길었다. 미노베방정식은 한마디로 ‘도로-보도=차도’로 정리된다. ‘도로-차도=보도’라는 기존 공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노베방정식이 시사하는 의미는 삼척동자도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도로를 건설할 때 먼저 필요한 만큼 차도를 만들고 그러고도 공간이 남는다면 보도를 만들거나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오랜 관행이자 공식이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도시의 도로·교통체계가 자동차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동차 중심의 도로·교통체계를 사람(보행자) 중심으로 바꾼 사람이 바로 미노베 료기치(美濃部亮吉) 동경도지사였다.

 그는 1967년 당선 이후 내리 3선을 연임하면서 동경도정을 바꿔 ‘혁신지자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일본에서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막 시작된 1970년대에 이런 획기적인 정책이 제시되고 추진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요즘 용어로 얘기하자면 미노베방정식은 도로다이어트나 보행자우선도로 또는 보차공존도로와 흡사한 발상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도로,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걷는 데 불편한 사람들도 배려하는 도로를 만드는 도시가 바로 사람들의 도시가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주변 도로를 걸을 때 미노베방정식이 적용됐는지 살피는 수고 정도는 기꺼이 감당하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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