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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왕자님과 공주님이 등장하는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사랑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한다는 식의 해피엔딩이다. 몇 해 전 이러한 상투성을 깬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 이었다. 바로 ‘겨울 왕국’이다. 이 작품 속 행복한 결말은 백마 탄 왕자님의 키스로 마무리되는 대신, 자매끼리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완성됐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영화 ‘겨울 왕국’은 자매애를 중심에 두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제인의 말로’는 앞서 언급한 ‘겨울 왕국’과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우선 남성 캐릭터의 개입이 자매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못한다는 점은 비슷하나 그 외 외형과 서사는 상당히 다르다. 나이든 두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62년도 작품 ‘제인의 말로’를 만나보자.

 ‘베이비 제인’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제인은 보드빌 쇼의 아역 스타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깜찍한 퍼포먼스와는 달리 무대 밖 실상은 안하무인의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언니 블랜치는 동생에게 치여 어떠한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분노와 시기심으로 가득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전세는 역전된다. 은막의 대스타로 발돋움한 언니 블랜치와는 달리 왕년의 아역 스타 베이비 제인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언니 덕에 겨우 배역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자매에게 교통 사고가 발생한다.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매 중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을 때, 운전석에 탄 다른 사람은 가속페달을 밟고 그대로 돌진한다.

 수십 년이 지나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 언니와, 언니의 수발을 들고 있는 동생 제인은 이 삶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언니의 재력에 기대어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게 없을 만큼 제인은 언니가 성가시다. 반면 블랜치는 왕년의 대스타답게 기품 있는 말투와 행동으로 동생을 대하지만 식사시간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불편할 때마다 알람 벨을 시끄럽게 울려대며 나이든 동생을 부려먹는다. 뿐만 아니라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영화는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자매의 광기 어린 마지막 시간, 그 최후까지 담아내고 있다.

 영화 ‘제인의 말로’는 자매로 대변되는 인간의 시기와 질투, 폭력과 광기, 위선과 교활함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 폭로한 작품이다. 흑백의 날카로운 명암을 통해 영화는 두 자매의 심리적 광기를 탁월하게 포착하고 있다. 아역 스타로의 물질적인 성공을 우선시 했던 자매의 유년시절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못된 인격을 형성하게 했다. 끝내 서로에 대한 질투심과 원망으로 아비규환을 자초한 이들의 결말은 무척이나 씁쓸하다. 이 영화의 힘은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자매를 연기한 두 거장 배우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의 공이 크다. 비뚤어진 욕망의 노예가 된 자매의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은 두 배우의 응축된 연기력으로 강렬하게 폭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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