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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소설가
전 국민이 여행을 떠나는 세상이라 여행은 우리 삶에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해외여행은 패키지가 주류다. 하지만 명승지를 찾아가 발자국 찍은 인증 샷을 남기는 여행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느리게 걷는 여행이 사람들 버킷리스트가 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해서, 한정된 여행경비로 최대한 많은 장소를 섭렵해야 해서, 짧은 시간 안에 분주하게 여행지를 거쳐 간다.

 "핫해지기 싫어요." 유명한 곳 되기 거부를 선언한 업장 이야기를 접하면 셰프나 주인이 궁금해진다. 언젠가 ‘미슐랭 가이드’에 별 셋을 받은 식당으로 선정된 오너 셰프가 더 이상 미슐랭 평가에 연연하는 요리사가 되지 않겠다고 타이틀을 반납한 외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식당은 찾아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 정성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지 그들의 눈높이와 평가에 맞추느라 풀메이컵한 시간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식당은 곧 ‘미슐랭 가이드’ 선정 식당에서 이름이 삭제됐다.

 블로그 출입금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금지, 사진 촬영 금지 등 핫해지려고 온갖 기를 쓰는 세상에 유명해지는 것이 싫다며 그냥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니 제발 내버려두라는 당당한 요구가 신선하다. 신조어 만들기를 좋아하는 매스컴에서는 혐핫(嫌HOT) 신드롬이라고 한다. 대기표 받아서 기다리다가 내 번호가 불리면 자리에 앉자마자 신속하게 주문을 받고 몇몇 식당은 선불로 계산을 한다.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상호가 올라오면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도 이 특별한 집을 방문했다는 안도감에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했다. 자동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져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는 기계적인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그 식당이 천상의 맛을 내는 곳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치여 들뜬 안내를 받고나면 기를 빨린 것처럼 피곤이 몰려오고 이 번잡스러움을 상쇄할 만큼 맛있는 식사였나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작된 혐핫 신드롬이 아시아권으로 보폭을 넓혀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도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노 포토 노 모바일 폰’(No photo, No mobile phone) 안내문을 붙여놓고 ‘핫 플레이스’ 되기를 거부하는 진짜배기 자존심을 만나는 경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손님들로 미어 터진 가게는 운영상 한계가 있어서 주방장도 손님도 음식맛과 분위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다. ‘다들 사진 찍기에 바빠 제때 먹지도 않고 심지어 의자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며 나는 이런 손님을 원하지 않는다는 76세 노 셰프의 말이 인상 깊었다. 손님이 주인장의 손맛을 담아 정성스레 내온 음식을 맛보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지도 마찬가지다. 어디가 뜬다더라 하면 거리며 식당이며 유적지나 기념관, 미술관에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된다. 방문 인증 샷을 찍느라고 무질서해지고 떠밀려 다니다 녹초가 돼 숙소로 돌아온다. 빨리빨리 최대한 많은 곳에 발자국을 찍어야 알차게 여행을 했다는 안도감이 온다. 여행길이 숨차게 빡빡해도 떠나온 여행이 선택받은 것 같아 좋기는 하지만 언제부턴가는 느리게 걷고 천천히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유명한 장소가 아니면 어떤가. 여행은 일상의 일탈을 누리는 시간인데 나와 그 장소가 교감을 할 수 있는 곳이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란 생각이 새록새록 들기 시작했다.

 표준화 된 콘셉트는 효율성이 미덕이다. 개인의 감성이 우선될 수 없는 구조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올린 사람은 롤 모델이 돼 칭송을 받는다. 어쩌다 기계의 부속품 같은 존재에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삭막한 감성의 사막에 회의가 생긴 사람들이 켄베이어 벨트에서 내려 자신을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를 돌보며 휴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품위 없는 고민과 경쟁에서 품위 있는 고민으로 나의 품격을 올려보고 싶은 갈망이 온 것이다.

 세상의 비열함이나 이기적인 나의 욕망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교감을 나눌 자연도 좋고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한 생명의 순수를 느껴볼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이 조용한 곳에서 인간다움의 다움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고자 했다.

 좋은 것도 흔하면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가끔은 희소성 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으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한적한 무명의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나고 분위기를 맛보며 음식을 즐기는 차분한 식당을 찾는다. 오는 손님도 맞이하는 주인도 아우성의 시간을 경험했기에 정당한 반전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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