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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요즘 나이 든 인생을 분류하자면 어르신, 노인네, 늙은이로 대분할 수 있다. 어르신이란 깔끔한 외모에 인격과 학식이 풍부하고, 말은 아끼면서 어디서든 지갑을 먼저 여는 분들에 대한 호칭이다. 노인네란 능력은 없지만 주책이란 소리까지는 듣지 않는 평범한 분들이다. 늙은이는 이웃과 동료는 물론 손자 손녀에게조차 베풀 줄 모르고 입으로만 생색을 낸다. 젊은이들과 주점에 가면 자신이 사는 것처럼 이것저것 주문을 해 먹은 후 슬그머니 사라져 누구도 다음부터는 합석을 하지 않으려 한다.

베풀지도 않으면서 한약방의 감초처럼 참견할 일이나 안 할 일이나 나서고 자기 말이 곧 법인 양 고집을 피운다. 행동으로 베풀기보다 입으로 한몫하기 때문에 자식이나 며느리로부터도 아버님이 아닌 늙은이 취급을 당한다.

연금을 많이 받으며 인심 후한 부모는 장수하기 바라는 어르신, 부동산을 많이 가졌으면서도 인색한 부모는 빨리 죽었으면 하는 늙은이 취급을 받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르신으로 살아가는 정도(正道)를 묻는다면 그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선배 약사님은 주변에서 불러줄 때 거절하지 말고 참석하고 반드시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이가 벼슬이 아니니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귀를 열라 한다. 고개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하라 한다. 입술은 잠그고 지갑을 열어야 어르신 대우를 받는다 한다. 주변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넘치는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1만3천 명 중 2016년 현재 65세 이상 회원은 6천356명으로 50%에 육박한다. 돈이 되지 않는 문학에 기웃거리는 젊은이가 드물고 나이테가 두꺼운 인생철학에서 문학의 영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권투선수 ‘조지 포먼’은 20세에 권투계에 입문해 24세에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 1분 35초 만에 TKO시켜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됐다. 그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하고 은퇴한 후 기독교에 귀의해 10여 년간 목사로 새 삶을 보내다가 권투 선수로서는 할아버지 나이인 45세에 29세의 챔피언인 ‘마이클무어’를 10회에 KO시키고 챔피언에 재등극 했다.

비아그라가 생산되기 전, 성생활을 제대로 못해 이혼 위기에 몰린 30대 남성과 정력을 주체할 수 없다는 80대 노인이 동시에 내 약국을 찾아와 상담을 했을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속설을 실감했다.

나도 한때는 정력제를 찾는 60대를 주책없는 노인이라고 속으로 탓한 적이 있었다. 그 나이면 부부관계는 물론 모든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은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60대 중반에 들어서니 ‘인생은 60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인천시가 60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65세로 돼 있는 노인의 나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응답자의 33.4%는 70~74세로, 33.2%는 75~79세로, 25.2%는 80~85세로, 4.5%는 65~69세로 변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30~40여 년 전만 해도 환갑이라는 수명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59세에 갑자기 쓰러져 절명하는 선배 약사님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환갑잔치를 구경할 수 없고 칠순 혹은 팔순 행사가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도 법조항은 65세가 되면 노인이라는 달갑잖은 별칭을 수여한다. 65세가 넘은 분들의 대부분 자신은 아직 청춘이며 노인이라는 호칭은 적어도 70대 중반을 넘긴 분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한참인 나이에 지하철 공짜 승객이란 천덕꾸러기 취급도 원치 않는다.

노인의 나이는 65세라는 규정을 수정해야 한다. 젊은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도 노인이라는 호칭을 받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진다고 하소연하는 분도 있다. 우선 70세로 한계를 정하고 수명의 연장에 따라 차츰 75세로 올리면 어떨지? 그러면 자신감을 갖고 미래의 꿈에 적극 도전하는 이 사회의 일꾼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정치인들에겐 노인이란 호칭도 정년퇴임이란 나이 제한도 없지만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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