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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돌아올 날만 기다렸는데… 또다시 가족과 생이별 눈물

사할린 동포 강정순 할머니의 외로운 설명절

김태형 기자 kth@kihoilbo.co.kr 2018년 02월 14일 수요일 제19면
▲ 지난 1942년 사할린으로 이주한 강정순(87) 할머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까지 걸린 시간은 63년, 그리운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의 잃어버린 세월은 돌아오지 못했다 . 김태형 기자<br /><br />
▲ 지난 1942년 사할린으로 이주한 강정순(87) 할머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까지 걸린 시간은 63년, 그리운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의 잃어버린 세월은 돌아오지 못했다 . 김태형 기자
"러시아에 사는 큰아들, 막내딸과 함께 한국에서 떡국을 먹으면서 설을 보내는 것이 얼마남지 않은 생의 작은 바람이에요."

민족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인천시 연수구 연수3동에 위치한 인천 사할린 동포복지회관에선 타국에 남겨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05년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60여 년의 세월을 사할린에서 살았던 강정순(87) 할머니도 매년 명절이 돌아올 때면 타향에 있는 자식들의 그리움으로 가슴이 메인다. 그런 할머니의 그리움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침대 머리맡엔 가족들과 자식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지난 1942년,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인의 말에 가족들과 함께 10살의 나이로 사할린으로 떠난 강 할머니는 한시도 조국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버지 손만 꼭 잡고 배를 탔어, 아버지는 사할린에 도착해 탄광에서 일했지만 나는 학교도 못 다니고 형제들이랑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지"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3년 후 러시아가 당시 일본 영토였던 사할린을 침공하자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모두 이주했지만, 한국인은 그대로 사할린에 남았다.

강 할머니는 "길을 걷다가 비행기가 지나가면 폭탄이 떨어질까 무서워 동생들과 풀숲에 숨어 있었지. 어떤 일본인이 너희들은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하라고 말한 뒤 매몰차게 떠나버렸어"라고 말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들만 버리고 떠난 일본인들을 보며 그녀는 나라 없는 서러움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이후 한국인과 결혼한 강 할머니는 슬하에 3남 1녀를 낳고 살다가 2005년 막내 남동생과 함께 안산에 있던 전문요양원을 통해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 씨는 "사할린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며 "아직도 타국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둘째, 셋째 아들을 지병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1988년 남편마저 여의고 복지회관에서 홀로 살고있는 강 할머니는 설을 앞두고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그녀는 "러시아에 사는 큰아들, 막내딸과 함께 한국에서 명절을 보내고 싶다"며 "내가 직접 만든 떡국 한 그릇 먹여주고 같이 한 방에서 오손도손 얘기하며 명절을 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말하는 강 씨의 눈동자는 이미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향해 있었다.

김태형 기자 kt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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