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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음력으로 정월이다. 설 명절 연휴도 끝났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가족 친지와 회포도 풀었을게다. 예전에는 새해 정초(正初) 행사 중 하나로 가정마다 한 해 운수를 점쳐보는 사주풀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정초에 점을 보는 풍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온다. 오행점(五行占)을 던져 새해의 신수(身數)를 점친다. 오행에는 각기 점사(占辭) 즉 점괘가 있다. 나무에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를 각각 새겨 장기알같이 만든다. 그것들을 일시에 던져 자빠지고 엎어진 상태를 보고 점괘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풍습이 조선 말기부터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것으로 자리 잡혀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조선 중기 학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함)이 지은 도참서(圖讖書)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다. 구래의 풍습 중 하나인 점복(占卜)에 의존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친다는 것이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복잡다기한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추측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약한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필자도 이따금 재미 삼아 보곤 했지만 대개는 누구에게나 그다지 흉측한 점괘는 나오지 않는다. 궁핍한 생활고 등으로 처지가 딱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도록 점괘를 내려주곤 하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아산 현감으로 부임해 빈민구제기관인 걸인청을 세우는 등 빈민구호에 나서기도 했던 목민관 이지함이 점술서를 저술한 목적도 여기에 있었다. 흉한 일은 피하고 좋은 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피흉취길(避凶就吉)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점복 결과에 따라 혹자는 흉점이 나왔다 해 실의에 빠지고 혹자는 길점이 나왔다 해 자만하기도 한다.

 필자가 청와대 춘추관에 출입할 당시만 해도 삼청동 주변에 자리한 역술가 집 문턱이 닳을 정도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대선·총선을 가리지 않고 출사표를 낸 후보들은 상당수가 점집을 찾곤 해왔다. 당락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무속이지만 예언가에게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게다. 하지만 재미 삼아 한번쯤 찾아보는 것은 좋겠으나 맹신하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짓이다.

 근자에 들어서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토정비결이 성행하고 있다. 대학로에서는 ‘타로카페’, ‘사주카페’ 라는 등의 간판을 내걸고 앞날을 궁금해 하는 젊은 청춘들을 고객으로 해 성업 중에 있다 한다.

 과거시험제도에 회의를 느낀 백범(白凡) 김구(金九)는 어느날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해보았다. 어느 한 군데 귀하고 부하고 좋은 상은 없고, 천하고 흉한 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구해다 준 중국 전래의 비서(秘書)로 일컬어지는 관상학의 일종인 ‘마의상서(麻衣相書)’를 탐독했다. 그 관상서에는 "얼굴 좋은 것이 몸 건강한 것만 못하고(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착한 것만 못하다(身好不如心好)"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문구를 보고는 무릎을 치며 "얼굴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백범이다. 그는 곧 관상서를 덮어버리고 역사학·병학 등의 학문에 진력해 민족의 지도자가 됐다.

 지금의 얼굴 모습이 스스로가 만든 얼굴이고 현주소다.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 했다. 희망을 잃지 말고 긍정적인 사고로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을 비롯해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갈채를 보낸다.

 얼굴의 형상으로 운명을 점친다? 중요한 것은 긍정의 마인드다. 긍정의 마인드에는 무서운 마력이 있다. 언제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자세야말로 누구나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에서 전해오는 금메달리스트들의 소회를 들어보면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고 한다. 하나같이 ‘하면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는 한 미래는 밝다. 꿈은 이루어진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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