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서울에 들른 북한과 미국 고위급 대표단 간 대화가 성사 직전에 막판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대화를 중재했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전부터 북미 최고위 인사 간 대화를 성사시켜 북미대화의 시발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간접적으로 밝혀왔던 만큼 상당히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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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문 대통령 뒤에 김영남과 김여정, 옆에 펜스 부통령 내외
(평창=연합뉴스) =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바로 뒤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옆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가 자리하고 있다. 2018.2.9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 "펜스 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김 제1부부장 일행을 만나려고 했으나 북한 측이 이를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펜스 부통령이 서울로 떠나기 전부터 김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날 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은 이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고, 이 만남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으나 북한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WP는 청와대가 10일에 북미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 내에서 만날 수 있게 주선했고 이 만남에 남측 당국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10일은 문 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오찬하고 접견한 날이다.

문 대통령은 오전 11시께 청와대를 찾은 김 제1부부장 일행과 2시간 20여 분간 접견과 오찬을 함께했고 김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김 제1부부장과의 접견 이후 펜스 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대화를 주선했을 확률이 높다.

WP는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미 양측이 10일 오후 이른 시간에 만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김 제1부부장과 펜스 부통령이 만나기로 예정됐던 시각을 두 시간도 채 남기지 않아 취소했다'는 WP 보도와 김 제1부부장의 이날 행적은 어느 정도 들어맞는 면이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과의 접견을 마치고 현송월 단장 등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을 격려하는 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취소하고 오후 3시께 KTX를 타고 강릉으로 향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 만찬을 했다.

WP의 보도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주선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는 자리에서 북미대화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한미 정상통화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최고위급 인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이를 대화의 모멘텀으로 삼아줄 것을 미국에 당부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북한과 미국을 대화테이블에 앉히려는 문 대통령의 본격적인 '중재외교'는 지금 물밑 진행 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받은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사전 여건조성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에는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을 당부하는 동시에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설득하는 한편, 미국에는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의중을 확인하는 '탐색적 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가 북미 최고위급 접촉 시도와 관련한 '고급정보'를 흘린 것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거부하는게 아니고 오히려 북한에 책임을 넘기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논의를 자꾸 기피하면서 북미간에 의미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라는 얘기다.

특히 이 같은 보도가 나온 시점은 우리 정부가 북미간 예비적 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바꿔말해 북한의 명확한 태도변화가 없는 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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