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 소미미디어 /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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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은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써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연애소설이다.

 ‘백은의 잭’을 비롯해 ‘질풍론도’, ‘눈보라 체이스’에 이은 스키장 연작 ‘설산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배경인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을 무대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사를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저자만의 솜씨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소개팅에서 만난 모모미와 스키장을 찾은 고타는 곤돌라에서 잘 아는 사람과 꼭 닮은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고글을 벗고, 페이스마스크가 벗겨지면서 드러난 얼굴은 고타의 동거 상대 미유키였다.

 양다리를 걸친 남자가 애인과 스키장에 놀러 왔다 공교롭게 약혼녀를 마주치고, 멋진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스키장에 왔다가 의외의 상황에 봉착하거나 스키장 단체 미팅에 참여했다 인연을 만나기도 하는 이들의 꼬이고 얽힌 사랑의 화살표가 마지막으로 가리키는 곳은 어디일까?

 ‘겔렌데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 설원의 분위기가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을 부각시켜주기에 스키장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법칙이다. 그래서인지 사토자뿐 아니라 온천스키장에서도 사람들이 자꾸 사랑에 빠진다. 동계스포츠를 애호하고, 특히 스노보드를 즐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저자의 작품은 이례적으로 스노보드 전문지의 의뢰에 따라 연재한 소설이다. 설원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남녀 8인이 각자의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랑의 화살표 앞에서 조금은 한심해지고,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과감해지는 사람들의 속절없이 꼬이는 연애전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웃음이 나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 없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편안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가벼운 이야기 속에는 사랑의 주파수를 맞추는 데 필요한 인생의 조언이 새겨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 표 연애 소설의 재미를 느낀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밴디 리 / 심심 / 2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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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일 때 의사는 골드워터 규칙을 어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예일대학교 의학대학원 법·정신의학부 교수 밴디 리와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및 정신건강 전문가 27인의 말이다.

 미국정신의학회 윤리강령 중에 ‘골드워터 규칙’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직접 대면해 검사하지 않았고, 합당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특정 공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를 통해 ‘3분 15초마다 거짓말을 하는 남자’ 트럼프를 평가하고 진단해 전 세계에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로 결심했다. 국가 권력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인물에 의해 남용되는 것을 감지한 이상, 특수한 정보를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할 ‘경고의 의무(Duty to Warn)’가 있다는 절박함, 그들이 그토록 훌륭하게 여겨온 규칙을 깨기로 한 이유다.

 저자 밴디 리는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원 법·정신의학부 임상조교수다.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에서 폭력과 건강연구 그룹(Violence and Health Study Group)을 공동 설립했으며, 세계보건기구에서 폭력방지 협력자 그룹을 이끌고 있다.

웃음의 현대사
김영주 / 웨일북 /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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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현대사’는 일제강점기 신파극부터 어젯밤 토크쇼까지 문득 떠올려보고 웃으며 공감하는 예능사 이야기다.

 책은 배우 아닌 변사로 흥행이 만들어졌던 일제강점기 극장에서부터 모든 방송을 생중계처럼 목소리를 내보내야 했던 라디오방송국의 사연, 컬러 텔레비전 보급이 늦어졌던 이유, 희대의 개그맨 이주일이 갑자기 일체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됐던 뒷이야기까지 예능사와 각 시대의 사건들을 넓게 펼쳐놓는다.

 각 장마다 아빠인 작가가 딸에게 들려주는 시대적 잡담은 당대를 간단하고 쉽게 정리해볼 수 있도록, 이어지는 예능가 이야기와 잘 어울려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직 방송작가인 저자의 경험들은 마치 견학 온 듯 방송가의 모습을 세세하게 책에 그려낸다.

 1980년대 ‘유머 1번지’의 ‘반갑구만, 반가워요’ 유행어를 지금의 10대와 나누고,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이 서로의 장점을 옮아가는 요즘의 흐름까지 읽어낸다. 오랜 시간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대한민국 웃음의 변천과 예능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재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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