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두 개의 화두가 있었다. 첫 번째는 청원 사상 최대 추천 청원수를 단 3일 만에 달성하며 현재까지(24일 기준) 59만 명을 돌파한 ‘스피드스케이트 팀’에 대한 것이다. 소위 팀워크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게 그것이다.

당시 상황을 볼 때 ‘선수 상호 간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팀워크도 엉망진창이었던 것’은 맞는 듯하다. 그러나 누가 더 피해자인지에 대해선 결국 선수와 코치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두 번째는 2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건이다. "정형식 판사의 판결과 그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감사를 청구합니다"라는 청원이 그것인데, 이 역시 3일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듯 순식간에 높은 참여율이 나타난 데 대해선 ‘같은 성향을 갖는 정치집단의 단체행동 또는 동일인의 중복 참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사법권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법 질서의 체계를 모독하는 행위다.

 기가 막힌 건 여당과 청와대의 인식이다. 정 부장판사의 판결에 대해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판경(判經)유착"이라 하고, 안민석 의원은 "재판정을 향해 침을 뱉고 싶다" 했다. 심지어 청와대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강하게 보장돼도 국민청원에서 나타난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여론 재판을 하는 게 옳다는 것인가.

특히 두 사례의 공통점은 특정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결속해서 의견을 표출했다는 데 있다. 이처럼 비합리성과 확증적 편향으로 채워진 결과들이 마치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여론인 양 취급되는 건 곤란하다. 청와대 게시판은 제도의 개선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청원하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가상공간으로 전락했다. 혹여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판사를 파면하거나 국가대표를 해고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로 가는 길일 것이다. 품격을 잃은 사회는 결국 지옥행 열차를 탄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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