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고화질)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가장 많이들을 수 있는 말은?”, “걸레 가져와. 바닥 쓸고. 유리창 한번 닦아줘.” HD방식으로 제작된 MBC `베스트극장',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편(9월27일 방송)의 조연출 강대선씨가 MBC홈페이지에 올린 제작 후기에서 털어놓은 내용이다.
 
인물의 땀구멍과 솜털까지 속속들이 보인다는 HD 프로그램의 촬영장은 대청소현장을 방불케 한다는 게 강 PD의 얘기다. 유리창에 묻은 작은 얼룩도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스태프들은 대본과 무전기 대신 청소도구를 들고 뛰어다니기 바쁘다.
 
커피나 차 등 뜨거운 음식을 앞에 두고 NG가 여러차례 날 경우 반드시 다시 끓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락모락 솟는 김까지 화면에 잡히기 때문이다.
 
KBS·MBC·SBS·EBS 등 지상파 방송 4사가 본격적으로 HD방송을 시작한지 1년여.
 
지난 6월 월드컵 때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포착, 그 위력을 발휘했던 HD방송은 작년 말부터 단막극과 다큐멘터리, 스포츠 중계 등을 위주로 제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2일부터 첫방송된 SBS특별기획 `대망'(극본 송지나,연출 김종학)이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로 전편(24부작)을 HD방식으로 제작 중이서 성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HD드라마는 편당 제작비가 기존 드라마의 2~4배 이상 들기 때문에 각 사마다 단막극을 제외하고는 섣불리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연출을 맡은 김종학 PD는 “현재 한국의 방송 광고단가 수준과 제작비와의 상관관계 등을 고려할 때 제대로 된 HD드라마를 찍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첫 시도이긴 하지만 `대망' 역시 엄밀히 따지면 완벽한 고화질 방송은 아니다.
 
고화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HD수상기의 보급이 국내에서 5%에 불과해 제작진은 고화질카메라로 기존 수상기 배율을 감안해 찍고 있는 것. HD방식인 16:9 배율로 찍으면 4:3배 율인 기존 수상기를 가진 대다수 시청자는 위 아래가 시커멓게 잘려나간 화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HD드라마는 극장 스크린처럼 화면이 길어지고, 화질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세트나 미용, 분장, 조명, 미술 등에도 훨씬 많은 공을 쏟아야 한다.
 
배우의 귀 뚫은 흔적까지 다보여 구멍을 막아야 하며, 피부 트러블을 감추기 위해 `대망' 제작진은 일본에서 개발된 HDTV용 화장품을 공수해 오기도 했다. HD TV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피부미인'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이구동성이다.
 
지난 9일 시사회에서 만난 주연 장혁과 한재석은 머리를 어깨까지 길게 기르고 있었다. 가발을 붙인 티가 나지않도록 일부러 기른 것. 일체 염색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극에서 여인들의 머리에 얹는 가발로 사용한 검정 실타래도 실가락이 다보여 쓸 수 없으며, 수염도 한올 한올 섬세하게 붙여야 한다.
 
합판으로 만든 마당이나 마루 등 기존 세트도 HD방송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제천에 있는 `대망' 오픈 세트에는 벽과 가옥을 실제 흙과 돌, 기와로 쌓아 올려 사람이 실제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뿐만 아니라 촬영에 필요한 HD카메라는 주변 온도에 매우 민감해 서득원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고 말한다.
 
`대망'의 편당 제작비는 1억2천만 원선으로 알려졌으나 세트비, 분장, 미술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제작진의 귀띔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처럼 까다로운 제작 방식과 높은 비용때문에 HD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KBS드라마국 안영동 주간은 “제작 기간이 늘어나면 배우들의 개런티가 그만큼 오르는 등 갖가지 문제가 복합돼있어 최소한 2005년 후에나 제대로 된 HD드라마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광범위한 DVD시장이나 세계 시장을 감안한다면 HD방식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KBS는 현재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로 화면과 음향 모두 디지털 HD방식으로 제작하는 `HDTV문학관-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박범신 원작)를 안면도에서 촬영 중이다.
 
한편 일본NHK는 내달 7일부터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ABU) 총회를 맞아 아시아 각국의 방송환경을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11월4일 방송한다.
 
이날 NHK는 아시아 최초로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실시 중인 한국의 방송현황을 전달하기 위해 KBS수원드라마센터의 야외세트장에서 오전 8시부터 생방송 리포트를 하기로 돼 있다고 KBS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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