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보(進一步). 한 걸음 더,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성숙해야 하는 우리네 삶의 과제다. 육신이야 매일 노쇠하고 있어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 내면의 진일보는 다르다. 매일 살을 비비는 가족들에서부터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직장 선후배까지 당신의 진일보를 어김없이 기대하고 있다.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조직이 생산한 최종 상품을 소비하는 얼굴 한번 못 본 타인들의 바람에도 녹아 있다. 하지만 고단한 삶의 연속에서 진일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토록 중요한 자기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단단히 둘러싼 사회 구조적·환경적 측면이야 하루 이틀에 바꿀 수 없는 문제다. 어딘가 우리 내면에서 원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성장을 정체시키고 퇴보시키며 궁극적으로 가족과 조직의 운명까지 ‘반동(反動)’의 역사로 이끄는 그 어두움은 자학과 자아도취의 그림자다. 자학은 지나친 자기 비하다. 이는 낮은 자존감에서 온다. 낮은 자존감의 생성은 타인에게서 기인했지만 치유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더 없이 잔인한 원리다. 낮은 자존감은 빳빳이 들지 못한 고개로 대변된다. 쳐들지 못한 고개로는 시선과 시선을 맞닿지 못한다. 각종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은 공중에서 분해되고 진심으로 흡수되지 못한다. 겉도는 대화는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게 자신을 자아 안에 가둔다. 치유와 돌파는 당신의 몫이다. 이럴 때 나를 저버리면 세상도 증발한다는 이치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상이 나에서 시작되고 나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어진다.

자아도취(自我陶醉)는 통상 자학보다 더 위험하다. 자학적 존재는 존재를 낮추고 몸을 숨기지만 자기 도취자는 반동의 역사 전면에 나선다. 빳빳이 쳐든 고개는 자기 중심적 합리주의로 빈틈 없이 무장돼 있다. 타인의 주장과 의견은 참고 그 이하도 이상도 못 된다. 본 기조는 자아 도취자가 잡는다. 자아 도취자도 그 생성은 성장기의 외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해결은 본인 몫이다. 비극적·극단적 상황에의 잦은 노출은 생존 전략으로 자아 도취를 체내화한다. 최악은 자아 도취자와 자학자의 만남이며 차악은 자아 도취자와 자학자의 부분 융합이다. 자학과 자아도취는 오늘도 진일보의 꼬리를 부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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