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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몇 년 전 중국 외교부의 류젠차오(劉建超) 부장조리(우리의 차관보급)가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건가?"라는 질문에 ‘짜오완(早晩)’이라고 답변했다. 통역은 이를 "조만간 방문할 것"으로 옮겼고 기자들은 이 뉴스에 흥분했으나 확인 결과 ‘츠짜오(遲早)’라고 했다. 풀면 ‘시간이 문제지 언젠가는 오지 않겠느냐’가 된다는 정도의 대답이었다.

 이처럼 옮기는 과정에서 종종 한중 양국이 한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미세하게 뉘앙스가 다르거나 용법이 달라도 마치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처럼 자기 편하게 해석돼 서로 간 오해가 벌어지는 일이 꽤 많다.

 지난해 일본의 아베 총리는 걸핏하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북한 위기론’을 두고 위급 상황을 누차 강조하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도 가능하다는 투의 긴장을 강하게 부각시키며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선거를 치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 선거를 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고 했다. 극도의 겁을 준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방위성은 북·미 무력 충동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 위기가 없다’고 하며 야당에서 ‘니마이지타(二枚舌 : 혀가 두 개)’라고 비판하는 등 화제가 됐다.

 전자에 대해서는 어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전문 통역사가 없이 한국어를 배운 외교관이 옮기다 보니 오해가 생긴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 외모에서도 큰 차이가 없기에 그렇다거나 서로 영향을 받은 점이 많기에 분명한 차이를 소홀히 하고 각자 자신의 시각에 맞춰 해석하려는 현상이라는 해석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후자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건 침소봉대하거나 편리한 대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인 건 귀 기울이지 않는 이중성 언어의 구사는 앞뒤 안 맞는 허튼 수법이라고 단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 한·중·일 차(茶)문화에 담긴 세 나라의 차이를 밝힌 「녹차탐미」라는 책자가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이 세 나라의 차문화는 녹차에서 시작됐는데 모두들 차를 단독으로 마셨다는 점과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고 마시는 것을 정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많으나 서로 다른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중국은 전통시대부터 생활 속의 차를 이룩해 왔고, 한국은 선비문화로서 절차와 찻물 끓는 소리에 대한 감상을 유독 즐겼다. 이에 반해 일본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다도(茶道)를 만들어 술잔치와 함께 사치스러운 놀이가 됐다."

 이 결과 차는 중국에서는 탄탄한 생산성을 기반으로 대중이 즐기는 일상의 행위, 한국에서는 형식적인 예절로서의 의미, 일본에서 경품 같은 것을 내걸고 즐기는 무사들의 떠들썩한 놀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동양 삼국의 차문화와 어감(語感), 언행(言行)의 이중성은 긴히 연결돼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형성된 인식 면에서 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베이징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나온 말과 반응을 곰곰 헤아려 보면 류젠차오는 일상적인 대답, 흔히 쓰는 어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곧’이라는 데서 이미 방중 일정이 조율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과 해석까지 했다. 단순한 통역의 차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저쪽은 일상인데 우리 쪽은 막연한 기대에 따른 자기 편한 예의로 풀어서 듣는다. 아베의 이중성은 사치스럽고 떠들썩한 다도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는 지난달에 중의원에서 "재량노동제 하의 노동자 근무 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말했다가 야당 의원이 부적절함을 비판하자 답변을 철회하고 사과하는 촌극을 빚었다. 재량노동제는 실제 일한 시간이 아니라 미리 정해 놓은 시간만큼 임금을 주는 제도다.

따라서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걸 자신의 입맛에 맞춰 떠들어댔다고 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 폐회식을 앞두고 우리는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참석할지 모른다고 들떠 있었으나 중국은 부총리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베는 평창 이후 한미 군사훈련까지 들먹이며 어떻게든 북핵 위기를 증폭시키려 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면만을 보려 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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