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공직에서 물러나 살 집을 보러 다녔다.

 그는 지인들이 추천하는 집은 모두 마다하고 시세가 백만금밖에 되지 않는 집을 천만금이라는 웃돈까지 얹어 주고 사 이사를 했다.

 이런 사실을 그가 살던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됐고,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이 같은 소문은 그가 새로 이사한 마을에까지 퍼졌다.

 좁은 골목길 건너 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 원로 여승진(呂僧珍)이 인사차 찾아와 그 소문에 대해 물었다. 송계아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저는 평소 여(呂) 어르신의 훌륭한 인품을 존경하고 흠모하여 죽기 전에 선생님 가까이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니 집값으로 백만금, 선생님의 이웃이 되는 대가로 천만금을 썼지만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지난해 아내가 조그마한 옷가게를 시작하면서 시내로 이사를 했다.

 어려서부터 줄곧 시내에서 살다 아내를 만나 시내를 조금 벗어난 원룸촌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15년을 넘게 살았는데, 옆집 빨래집게 개수까지 알고 지낼 만큼 지역사회 공동체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단절된 삶에 적응이 되질 않았었다.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는 가게 이층에 위치했다. 주변은 점포가 늘어서 상권이 형성돼 있는데, 건물주인, 점포주인 모두 다 친한 선후배들이다. 이삿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는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함께 비를 맞으며 짐을 옮겨줬다.

 우리 집과 가게 냉장고는 늘 다양한 음식과 과일, 음료로 가득하다. 새로 김치를 담갔다며, 과일을 샀는데 맛있다며, 누가 음료수를 사 왔는데 나눠 먹자며 갖고 온 것이다.

 매일 아침 향긋한 원두커피를 내려 대접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여름 저녁 둘러 앉아 정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겨울이면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점포 앞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함께 치우고,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정겨운 사람들.

 만약 이들과 이웃이 되기 위해 천만금을 써야 한다면 내 아끼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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