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원(인천재능대학교 평생교육원장).jpg
▲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부교수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은 한 곳이라도 더 봐야 한다는 욕심으로 유적지에 도착하면 사진 몇 장을 찍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에 급급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중 문화유산을 그리고 있는 여행자를 만났다. 사원을 구성하는 부재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화폭에 담아내고 있던 그는 화가가 아닌 평범한 여행자였다. 주마간산식 여행에 만족하던 내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장면으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살펴보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대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지만, 이를 실행하기까지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더구나 그림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얼마 전 「인천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인천시가 발행한 책을 받았다. 이 책은 글자가 가득한 일반적인 기획 방식에서 벗어나 인천을 대표하는 명소를 밑그림으로 그려 독자가 색을 칠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각 페이지에는 밑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색칠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준이 되는 색 하나를 넣었다. 만든 이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 좋은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책을 보면서 기쁨이 더욱 컸던 이유는 작년에 시도한 근대건축물 종이 모형 강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인천지역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만,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진 인천시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고 강의와 답사만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딱히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종이모형을 알게 됐다. 인천근대건축물 종이모형 5종 세트 개발 비용은 인천시 평생교육진흥원이 지원하는 공모사업에 참여해 해결했다. 개발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어렵게 탄생한 매체를 이용한 강좌를 진행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아마 이 책을 만든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명소나 문화재 그리기는 대회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천에도 검단선사박물관이나 인천관광공사 등이 주최하는 그리기대회가 있고, 인천건축문화제나 바다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개항장 일대에서 그림 그리기 행사가 열린다. 행사 형태로 진행되는 이벤트도 시민들이 인천을 이해하고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참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그리고 싶을 때 인천을 그릴 수 있는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리기나 모형 만들기와 같은 체험 중심의 활동은 인천지역 문화유산을 보다 세밀하게 이해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접근이 탄력을 받고,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해 전 인천시 중구도 인천의 주요 근대건축물 모형 키트와 개항장 풍경이 담긴 퍼즐을 만들었지만,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이 책을 시민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 작년 11월에 방영된 ‘길드로잉 투어 with 2DA’가 있다. 아리랑TV와 문화유산 채널이 평창올림픽 D-100에 맞춰 공동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출연자는 강원도의 명소를 보는데 그치지 않고 찬찬히 돌아보면서 멋진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출판물이 쏟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따뜻한 봄날 「인천을 그리다」를 옆에 끼고 인천으로 떠나는 여행을 꿈꿔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