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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도 한국장례협회 회장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 기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소속 칼리지들의 주요 목표는 학식이나 지식을 두뇌에 채워 넣는 것만이 아니다. 이곳 졸업생은 의사나 변호사, 신학자, 물리학자, 운동선수 같은 전문가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느 한 방면의 전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 그레이트브리튼 최고의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와서 2∼3년 머무르며 조화를 배운다. 육체, 정신, 심리가 고루 단련된 완벽한 인간이 유일한 목표이다.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종합대학이나 법학대학원, 종합 기술 전문대학, 병원 등 어디서나 전문적인 공부를 계속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는 전공분야에 대한 증서를 받지 않는다. 그들이 받는 것은 ‘인간의 증서’이다.

 여기에는 ‘조화와 균형(Well Balanced)’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숨어 있다. 그들의 교육은 특정 지식만을 갖춘 전문가가 아닌 균형 잡힌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우리나라 교육은 주요 과목 이외의 교과목을 줄이거나 없애고 있다. 수능 성적을 잘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교육의 본질 또는 목적으로 보고 있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금의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잠재력들을 여러 각도에서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지식만을 잣대로 등급을 매기고 있다. 인간은 매우 다양하다. 아이들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사회 환경은 어쩌면 여러 분야에서 훌륭히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없애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뿐 아니라 매체를 통해 접하는 갈등과 문제들도 대부분 조화와 균형의 망각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큰 화두가 되고 있는 가상화폐만 봐도 그러하다. 가상화폐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인류에 기여할 사회적, 경제적 발전보다는 단순히 투기의 목적에 온전히 쏠려 있다. 투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현실이 많은 이들을 수렁으로 이끄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부 지식인들까지 나서서 이 기현상을 합리화하고 있다. 어쩌면 블록체인이 가진 본래의 목적보다 단기간의 이익 실현에 집착해 균형을 잃은 것은 아닐까?

 조화와 균형 없는 사고는 곧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잃게 만든다.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하는 결심도 원래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계발서를 비롯해 주변의 많은 목소리들은 우리에게 무작정 목표를 세우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올바른 태도이며, 도전적인 삶의 정형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거기에 구체적으로 수치화한 목표를 세워 실행하라는 충고까지 곁들인다. 하지만 정작 왜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그리고 그 목표가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고민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그에 따라 우리가 1년에 책을 50권을 읽고 3개월간 체중 10kg을 감량하는 등의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우리의 목표는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인가, 아니면 50권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인가? 책의 권수에 연연하다가 며칠 만에 지쳐 버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건강이 목적일까 아니면 맹목적인 10kg 감량일까? 무리한 운동, 다이어트 약, 지나친 식단 조절로 인해 병원을 찾거나 부작용과 요요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 적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무엇이 본질인지 구분할 인지의 균형을 잃었다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본질을 이해하고 노력해야 원하는 결과로 잘 이어지는 법이다.

 특정 지식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린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좀 더 폭넓게 보고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세상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방법이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선수가 된 선수가 최고가 되기는 힘들다. 눈앞의 이익과 본질이 주객전도 되는 순간 삶은 균형을 잃는다. 중심이 확고한 삶을 위해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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