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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귀현 SMC개발㈜ 사장

2월 28일 새벽 3시 반, 갑작스러운 형님의 슬픈 소식은 저와 아우 동지들에게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오래고 고통스러운 투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시던 형님이셨기에, 인위적이고 매정한 차단에도 불구하고 불원간에 형님께서 허허 너털웃음으로 나타나실 것 같아 아우들은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아, 이토록 홀연히 떠나심이 진정 꿈이 아니란 말입니까? 형님이 운명하신 그날도, 늦겨울 비가 소나기처럼 오더니 오늘 새벽 형님을 운구하는 우리의 행렬도 궂은비가 앞장서 이끄셨습니다.

 최기선 大兄! 형님을 보내드림에 괜시리 옛 선인들의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이나 정승이 죽으면 적막강산’이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으나 이내 저의 어리석음도 부질없는 걱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더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오늘 시청 앞 영결식에서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기선 형님! 형님을 보내드리면서도 쉽게는 보내드리지 못해 이토록 애끓는 아우들의 몇 가지 추억들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형님의 일생은 정의와 청렴과 희생, 그리고 관인후덕이셨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만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만들기 위해 이른바 ‘3당 합당’이라는 편법을 썼습니다. 이때, 분연히 일어서서 반대 궐기를 시도해서 당 지도부를 혼비백산케 했던 유명한 일화는 바로 형님의 정의감을 웅변하였습니다. 형님은 관선, 초대, 2대 민선을 합해 거의 10년간 인천시장을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꽤 많이 축재했을 거라고 수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청빈함은 곧 드러났으며 의심했던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심지어 누구에게는 실망까지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님의 청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최기선 大兄! 형님의 행보 중에는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제4대 인천시장 선거 때였습니다. 그때 야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기에 얼마 전까지도 서로 시장 출마를 경쟁하던 자들이 얄밉게도 그림자조차 감춰버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님께서 저를 부르더니 손을 꼭 잡고 "박 위원장, 나를 좀 도와주시게. 아무도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내가 당을 위해 희생하기로 했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만 형님의 깊은 뜻을 알았기에 함께 구렁텅이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장렬히 전사하시고 말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없이 큰 형님의 어리석음이 빚은 정겨운 희생이었습니다.

 관인후덕한 최기선 大兄! 형님의 너른 가슴에 품기어 미련한 저에게마저도 오늘날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 오늘 인산인해의 이 영결식이 바로 형님의 관인후덕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형님을 이용해서 득을 보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으며, 그리고는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자들도 보았습니다. 제가 화가 나서 분풀이라도 할라치면 형님은 오히려 그들을 감쌀 뿐 아니라 두둔까지 하시니 저로서는 도저히 불감당이었습니다. 질게 뻔한 시장선거였기에 가장 혜택을 보았던 자들마저 도망갔으며 구렁텅이에 빠뜨려 놓고는 선거자금 한 푼 돕지 않은 자들도 그 이후 한 번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 형님을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저는 형님의 죽음마저도 제 일신을 위해 거짓 일언일필하는 부류를 눈감으려 합니다. 형님께서 물려주신 큰 유산으로 알겠습니다.

 최기선 大兄! 미련한 제가 어찌 동생들의 마음을 모두 담아 내겠습니까? 비가 내려 찬 땅에 형님을 묻고 돌아선 동생들은 이제사 그동안 입술을 깨물며 참았던 울음을 짐승처럼 울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오열’한다고 했던 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여전히 이들마저도 품고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형님! 물려주신 정의, 청렴, 희생 그리고 관인후덕의 유산을 간직해 형님을 영원히 추억할 것을 약속드리니, 부디 외로워하지 마시고 편히 주무시기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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