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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영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설날 떡국을 들다가 문득 "또 한 해를 보냈구나!"라고 퇴행적 생각을 하다가 반대로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하지?"라고 생각해 보았다. 항상 "바쁘다", "시간이 없네"라고 되뇌이며 지내 온 또 한 해였다. 기업 경영자로, 협회장으로, 교수로 살아오며 그날 그날 할 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정리하는 역량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키워 왔다고 자부하지만 기실 내게 정말 필요한 시간에 대한 집중력은 여러 상황, 채널에서 나를 정신적으로 어렵고 지치게 만들었다. "단 하루의 할 일을 의미 있게 조직하는 능력에 비하면 인생에서 다른 모든 일들은 어린애 장난이다." 대문호 괴테의 말이다. 이젠 좀 내려 놓고, 압축시키고, 의미를 재단하며 한 가지라도 제대로 내 주변에 던지는 메시지가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또 한 번의 정신적 성숙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서울에 세계 최초의 시민권자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드리 헵번을 닮았다는 그 로봇은 "건물에 불이 나면 누구부터 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윤리적인 판단 프로그램이 없다. 문(입구)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구하겠다"라는 논리적인 답을 내놓았다. 결국 기계는 사람의 ‘상황의 미묘함’이라는 본질적 문제 해결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아무리 과학문명이 우리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이끌고 있지만 인간다운 판단, 인간다운 태도는 수백 가지 표정과 기능을 탑재해도 절대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엔 ‘지신밟기’라는 민속행사가 있었다. 음력으로 맞는 새해에 지신(地神)을 다스림으로써 세상 모든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함을 축원하는 일이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에 일월성신(日月星辰). 즉,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해석되는 본질에 대한 소통인 것이다. 온 세상 낮과 밤은 태초부터 이어져 온 삶의 가장 중심적 시간 기준이고 시간의 지배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 인정 받았다.

이러한 관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시간을 되돌아간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나름대로 최근에 더욱더 나의 신념으로 굳어져감을 느낀다. 로봇과 무인자동차가 세상을 지배하려고 들지만 음력 정초에 풍물패들을 선두로 소고패, 양반, 하동, 포수, 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집집마다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풀이 가사를 노래하며 춤과 익살, 재주를 나누는 것으로 마을의 평안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민속놀이 ‘지신밟기’ 역시 잊혀져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전통과 소망, 시간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일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은 연구실 앞 잔디마당에서 ‘무술년 정월대보름맞이 지신밟기 한마당 행사’를 개최했다. 풍물패 길놀이와 대동고사, 지신밟기 한마당, 대동놀이로 진행하며 고사에는 헌주와 삼배, 음복, 고수레 같은 단어들이 시간을 초월해 난장을 이루며 어제와 미래를 이어간다. 유쾌하고 신명나는 하루였다.

 전체 진행은 사회적기업 잔치마당예술단(대표 서광일)에서 맡았다. 이 예술단은 일반 시민은 물론 대학 강의실에서도 전통과 본질, 나눔과 배려의 실천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단체다. 인공지능 시대에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우리의 정신 자본이자 문명 자산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본질을 외면하지 말라는 경구이기도 하지만 더욱 정진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가꿔 가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로봇이 땅을 밟고 정형의 기계 미소를 짓는다고 우리의 소망, 회한, 절박함, 갈구함을 알겠는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녹경원’과 ‘잔치마당’을 통해 우리들 삶의 본질과 이치, 기본을 생각하는 문명적 근간을 제공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우리 녹경원 원우들이 녹색가치를 좀 더 확대 해석해 우리 주변과 기업, 사회, 국가를 좀 더 정의롭고 풍성하게 가꿔 갈 것을 희망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청년 창업을 돕는 멘티·멘토 모임과 4차 산업혁명 인재 교육, 전통과 미래를 융·복합하는 일 등에 집중하며 무술년 한 해를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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