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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국민 청원을 통해 특별감사와 파면을 요구했는데, 청와대는 지난달 20일 "청와대에 그럴 권한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대다수의 시민들이 "청와대에 그럴 권한이 있다"고 실제로 믿고 어떤 구체적 조치를 기대하면서 청원에 참여했을 리는 없고, 실망과 분노를 그런 방식으로 표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고 해서 판결이 국민의 평가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판결은 엄정한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법관도 인간인지라 판단에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 많은 사람들(법률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포함)로부터 객관적 검증을 받음으로써 보다 훌륭한 정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한 사법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지난달 6일 정형식 부장판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면서 최근의 비판 여론에 대해 "결국은 사회가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판결을 옹호한 특정 보수 언론과 인터뷰한 것을 두고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말을 상기하면서 마땅찮게 보는 시각도 있다. 더욱이 발언 내용 또한 부적절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내 판단은 완전무결하며, 이를 비판하는 국민들은 미성숙(미개)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자칫 ‘오만·경솔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절대주의’는 민주주의와 법학의 최대 적이다.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법을 다루는 법관의 자세로서 부적절하다.

 법관은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 판단에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더 훌륭한 판단이 나오면 받아들이겠다"는 겸허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특히 이번 항소심의 판단 내용이 모두 (이견이 없을 만큼) 명확한 법리에 근거한 것 같지도 않다. 다수의 법률전문가들이 여러 쟁점들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뇌물의 인정 범위, 재산 국외 도피죄 해당 여부, 안종범 전 수석이 작성한 수첩의 증거 능력 유무, 양형의 적정성(36억 원 뇌물 공여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합당한지) 및 다른 판결들과의 형평성 여부(헌법상 평등권 침해 여부) 등이다. 이처럼 다툼의 소지가 있는 쟁점들이 있고 또 향후 대법원의 상고심 판단이 남아 있는데도 언론을 상대로 ‘명확한 법리’, ‘사회의 미성숙’ 운운한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이 아닌, 박 전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요구형 뇌물’이었다고 보고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권력자의 요구에 따른 범죄행위는 형사 책임이 감면돼야 하는가. 인터뷰 기사에 달린 다음과 같은 댓글들이 눈에 띈다. "어느 검사가 법사위원장의 요구를 거절하겠나", "군사독재 시절에 누가 고문 지시를 거절하겠나", "일제강점기 하에서 누가 천황의 요구를 거절하겠나", "나치시대에 누가 유태인 학살 지시를 거절하겠나" 등등. 범죄가 성립되려면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행위 당시 행위자에게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면 책임이 조각되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기대가능성 이론). 그런데, ‘기대가능성’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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