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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지난 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을 대표로 하는 우리나라 대북특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등과 합의한 ‘언론발표문’이 연일 내외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대표단은 1박 2일의 매우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과 4시간이 넘는 긴 만찬 과정을 통해 제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괄목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오는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그 이전에 군사적 긴장완화 협의를 위한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할 것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대화 진행 시 북한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과 남북한 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을 평양으로 초청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합의와 약속으로 인해 한동안 긴장이 감돌던 한반도의 정세는 마치 따뜻한 봄날의 훈풍(薰風)처럼 남북한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낙관적 전망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전망의 이면(裏面)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실망과 의아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내재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이뤄졌던 남북한 간 합의나 약속 이후 그 이행 실천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행태를 반추(反芻)해 보면 이런 우려나 의혹이 현실화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북한의 행태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성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저 멀리는 지난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1990년대 초반의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른바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이나 2·13합의’, 2000년 6월의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의 ‘10·4선언’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자신들이 역설했던 합의와 약속을 마치 ‘밥 먹듯이’ 뒤집었기 때문이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대내외에 천명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의 경우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시비하면서 북한은 그 이행 실천을 거부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우에도 국방부 장관의 ‘한미군사훈련 실시발언 문제’를 구실로 해 예정된 일련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었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를 시험하거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겠다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해 2005년 이래 지금까지 ‘핵보유국’ 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런가 하면, ‘6·15 공동선언’에서 김정일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는 약속은 허공에 울려 퍼진 메아리처럼 실현되지 못했으며, ‘10·4 선언’에서 남북이 상호존중과 신뢰, 내부문제 불간섭,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원칙 등을 천명했으나 이 역시 ‘물거품’처럼 됐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 대북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이끌어낸 여러 가지 합의를 열렬하게 환영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적지 않은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아무리 남북관계 개선, 북핵문제 해결 그리고 북한과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있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이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 과거와 같은 구태의연한 입장과 자세에서 벗어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동결과 폐기를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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